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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17. 2. 9. 23:40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작품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위대한 유산’, ‘이투마마’,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그리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래비티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중학교 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된 감독 이구요. 분수대 키스신으로 유명한 위대한 유산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 작품이었는지는 저도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네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흥행은 그리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제작비 7600만 달러를 들여서, 전 세계 흥행이 겨우 약 7000만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다지 큰 손해는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흔히 손익분기점을 제작비의 2배 정도로 보기 때문에, 칠드런 오브 맨의 경우에는 약 15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어야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7~8000만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아마 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밝은 편이 아니고,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도 아니어서 일반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고 바로 DVD로 발매 되었습니다. 제가 SF에 관심이 많아서 당시에 SF 관련 커뮤니티 등을 자주 둘러봤는데, 당시에 평가가 좋은 SF 작품이라고 몇 번 언급이 되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해리포터 감독의 숨겨진 명작이라면서 말이죠. 그때는 제가 제대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류가 전부 불임이 되고 아이가 없다는 것을 인류가 전부 늙고 노인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좀 황당하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다행히 매우 늦긴 했지만, 10년 뒤인 작년 9월 국내에서도 개봉하게 됩니다.

 

지금 와서 영화를 보면, 영화가 굉장히 앞서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저 출산과 인구 고령화야 당시에도 많이 논의되던 사회적 문제였지만, 영화의 갑작스러운 난민 증가는, 아무래도 IS로 인한 지금의 대규모 유럽 난민 사태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끔 합니다. 무대가 영국인지라, 게다가 영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니! 브렉시트 문제 또한 안 떠올릴 수가 없죠.

 

칠드런 오브 맨을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하면 자동완성으로 롱테이크가 붙을 정도로 이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 또한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비티의 우주 롱테이크 장면은 이 영화를 통해 다져진 내공이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유튜브 등에서 제작과정을 담은 동영상 등을 찾아보면, 촬영을 위해 자동차를 이리저리 개조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초반부 폭도와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후반부의 시가전 장면 등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이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좀 더 현실적이고 몰입감을 더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치 일인칭 슈팅(FPS) 장르의 게임을 할 때 느끼는 몰입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출산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영화에서 테오의 대사를 통해 느꼈어요. ‘100년 뒤면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으나?’ 그 대사를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더라구요. 항상 핵폭발이나 좀비, 외계인 같은 엄청난 대재앙만 떠올렸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이 없어도 인간의 수명은 한정적이란 말이죠. 다음 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게 쓸쓸하고 무서운 일일 줄이야. 그런 점에서 칠드런 오브 맨이 그린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사실 지금 현실과 별다를 것도 없네요.

 

이 외에도, ‘칠드런 오브 맨이 구축한 미래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호기심이 계속 떠오릅니다. 자살약이나, 영국 본토도 다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좀 의문이 드는 것이, 유일하게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영국이라면 과연 미래호는 어디서 온 걸까요? 여행도 여행증을 구해야만 다닐 수 있는 사회에서, 배가 움직인다?

 

초반부 미술관장의 호화로운 모습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인간 프로젝트도 그렇고, 철저히 통제된 사회 또한 그렇고, ‘28일 후의 영국처럼 고립된 지역이거나, 아니면 이퀼리브리엄리브리아처럼 국민들이 국가에 통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전으로 다른 세계가 오히려 멀쩡하다면 그때는 브이 포 벤데타브이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설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도 영국인 이었네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생각났습니다. 작 중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설국열차에서는 기후 변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아기 출산과 같은 일이 기적이자 희망이 되는 요소인 점. 그리고 한 때는 별반 정의롭지 않던 주인공이, 어떠한 일을 계기로 주도적으로 변하는 모습. 비슷한 유형의 장르여서 그런지 은근히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시가전이 한창인 와중에 테오와 키가 아이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군인, 민간인, 피쉬당 테러리스트 할 거 없이 경외하는 표정으로 싸움을 멈추는 모습일 겁니다. 영화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괴 아닌 생명을, 전쟁 아닌 평화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죠.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나오는 ‘Shantih(샨티)’ 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 어로 평화를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노예12년' '마션'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요새 자주 나오는 추이텔 에지오포가 나옵니다. 선한 듯 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맡은 모르도 역할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아무튼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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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게임.2017. 2. 8. 23:02


시점은 탑 뷰(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워크래프트2를 떠올리면 된다.)이지만, 3d로 지형의 고저차와 공중 유닛의 선회, 탄환 궤적까지 구현되어 지형에 따라 데미지가 막히기도 했던,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앞서 간 게임이었던 토탈 어나힐레이션.

그 후속작인 토탈 어나힐레이션 킹덤즈와 그 확장팩인 아이언 플레이그는 그 후 배경을 판타지로 바꾸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타이베리안 선과 스타크래프트 등이 각축을 벌이던 RTS 장르의 황금기에 출시되었던 게임이다.

내가 이 게임을 접하게 된 것은 11살쯤, 시내에 있던 한 대형 서점의 게임 매장이었다. 주얼판(게임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불법복제가 성행하던 우리나라에서 탄생된, 재고가 남은 패키지 게임을 저가에 덤핑하는 판매방식이었다.)으로 구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발매시기에 비해 꽤 재빠르게 저가형으로 재발매 되었던 것 같다. 정말로 흥행이 말이 아니었나보다.

전작인 토탈 어나힐레이션의 성공과 명성으로 주목할 만한 제작사로 발돋움했던 케이브독은,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 게임의 흥행 실패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허나 이런 세상의 평가와는 달리, 나는 희한하게 이 게임에 애정이 깊다.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내 성향과도 잘 맞았기도 하고, 스타크래프트의 아류 일색이던 당시의 게임판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던 장인의 풍모 같은 게 느껴 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나 같은 게이머들이 없지는 않았는지, 고전게임을 디지털화 하여 재발매 하는 사이트인 GOG.COM 에서도 다시 발매되었다.

비록 당시 3D 그래픽의 한계로 유닛과 건물의 외형은 네모난 목각인형과 다를 바 없지만, 각각 종족의 개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중세 봉건, 악마, 야만인 무리, 해상왕국 등 확장팩의 크레온 종족도 합하면 스팀펑크까지) 여기에 나름 미려한 지형 그래픽이 어우러지면, 작은 판타지 세계를 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자아낸다. 특히 드래곤 등의 공중 유닛이 날갯짓을 하며 선회하고 싸우는 모습은 지금 봐도 꽤 공들인 티가 나는 연출이다. 사실 기술이 발전한 지금까지도 RTS 장르에서 공중 유닛의 동선을 이만큼 공들여 만든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 노력이 결코 모자란 작품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배경음악은 중세풍의 우아한 느낌을 잘 살려준다. 종족마다 다른 테마로 곡 수가 그렇게 많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나, 그래픽과 함께 한층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그에 비해 유닛 음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효과음 또한 심심한 수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우아한 배경음과 정적인 효과음이 합쳐져 졸음을 유발한다는 평도 있었다.

게임이름답게 모조리 전멸주된 내용이던, 전작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의 큰 서사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싱글 플레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수채화와 중세풍의 스케치로 이루어진 원화와 영상이 브리핑과 컷씬으로 활용되어 몰입감을 높인다. 단지 아쉬운 것은 게임 내 연출을 강화하던 당시 트랜드와 달리 게임 내적인 면에서는 시나리오적 연출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이 게임을 더욱 심심하게 느끼게 했을 것 같다.

스토리는 그에 반해 매우 좋다. 마치 왕좌의 게임을 보는 듯, 생긴 것은 마냥 정의로워 보이는 종족이 가장 배반이 잘 일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동맹을 약탈하며 악의무리처럼 생긴 종족이 오히려 단합이 잘 된 모습을 보여준다. 4종족이 두 패로 나뉘어 싸우는 것이 오리지널의 스토리이고, 공통의 적인 크레온이라는 침략자에 맞서 이합집산 하는 내용이 확장팩인 아이언 플레이그의 스토리이다. 후속작을 염두한 것인지 스토리는 완벽히 종결되지 않고 열린 결말의 형식으로 나아간다. (크레온을 물리치지만, 그 과정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한 종족은 많이 위축되고, 오리지널에서 패배했던 두 종족은 이 기회를 틈타 재기한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는 독자성을 많이 추구했다. 자원 수집을 최대한 간략히 하며,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유닛 컨트롤을 세세하게 신경쓰기 보다는 좀 더 크게 전략적인 방향에 집중하게끔 유도했다. 시야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거리와 시야가 차이가 나는 유닛이 많아, 비행 유닛이나 정찰 유닛이 시야를 확보하고 투석기 등의 포병 유닛이 지원을 하는 다양한 유닛 조합을 통한 전략적인 플레이를 노린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인터넷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던 해외사이트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구사하며 해외 게이머들과 플레이 할 때는, 이런 의도와는 살짝 빗나가 엄청난 생산으로 전선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맞붙는 물량전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 같다.

장장 구매한지 15~16년 만에 엔딩을 보게 된 게임으로, ‘나만의 게임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좋은 배경과 설정이 있으니 이를 버리지 말고 누군가가 정신적 후속작 이라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P.S 

인스타그램의 간단한 감상을 이제야 정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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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2. 8. 01:42



영화 걷기왕’ 의 주인공 만복은 아버지의 역사적인 첫 차에 그만 토를 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 소풍 가는 버스부터 배, 비행기, 오토바이, 소까지 안타본 것이 없지만 극심한 멀미 때문에 탈 수 없었다. 이런 선천적 멀미 증후군 때문에 만복은 2시간을 걸어서 고등학교로 등교한다. 만복의 재능을 알아본(?) 담임선생님은 만복을 학교의 육상부에 추천하고코치가 경보 선수로 만복을 받아들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력과 열정. 정말 좋은 단어다. 나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이고, 또한 즐겨 쓰는 말이지만 요즈음은 왠지 이상한 뜻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개인의 특성이나 취향 혹은 사회적 문제 마저도, 전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노력만능설의 신봉자들을 비아냥 거 리는 의미의 노오오오력’ 혹은 노력충’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또 젊은 청년들을 무보수로 착취하며, 열정이 있으면 부당한 일도 참을 수 있다는 소위 열정페이또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멀미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인 만복의 시선으로어느 순간부터 변질되고 왜곡되어버린 노력과 열정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한다만복이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는 영화 초반부터 만복의 주변사람들(아버지부터 담임, 코치 어른들) 만복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만복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에, 그들은 만복을 자기들 마음대로 규정하고 그냥 무심하게, 일을 처리하듯 다음 단계로 넘겨버린다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던 상황이라고 수도 있겠다.      

또한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담임이 만에 희망 대학과 학과를 추천해주었던 경험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만복은 자기가 경보에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육상에 점점 흥미를 붙이게 되고,학교 육상부의 고참이자 유망주라 있는 수지는 이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다.       

수지는 처음엔 전형적인 타입의 노력파로 보인다. 죽기 살기로 하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본인 또한 그런 노력으로 성공을 일궈낸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더는 운동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신도 운동을 지속할 없음을 알지만, 평생 운동 하나에만 매진했기에 이제 와서 다른 진로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중반까지는 만복과 계속 갈등하는 인물이지만다시 육상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만복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무섭다고 하자 동질감을 느끼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예선 경쟁했던 선수들이 실격되어 본선에 진출하게 만복. 서울까지 갈생각에 걱정이 앞서지만, 이내 걸어서 서울까지 전국체전에 참가하겠다는 마음을 굳힌다영화 속에서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무언가를 타야만 했던  만복이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장면이라 가슴이 뭉클했던 같다.

그러나 무리하게 만복을 따라 나섰던 수지가 만복과 사소한 다툼을 벌이다 대회 전날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고,  이에 만복은 결의를 다지고 대회에 임하게 된다. 이때 만큼은 코치도 듬직해 보이고, 아버지도 딸이 방송에 나온다고 동네방네 연락하는 만복이 그동안의 시련을 딛고 우승할 것처럼 보이지만, 무리한 훈련과 함께 걸어서 서울까지 피로가 겹쳐 만복은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 다른 선수들과 함께 넘어지고 만다.        


어서 뛰라고 윽박지르는 코치들과 아픈 것도 참으며 이기기 위해 다시 일어서 걷는 선수들을 바라보다

만복은 생각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는 여태 보인 모습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심판에게 당당히 그만하겠다고 말하며 자리에 누워 버린다.


우리는 대부분 남이 정해준 목표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부터 그저 열심히 뛴다초등학교때는 좋은 중학교, 중학교에서는 좋은 고등학교고등학교에서는 이제 좋은 대학만 가면 끝날 알았지만 과연

이제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니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취업하고 뒤에는?

이렇게 평생을 걸쳐 성과와 결과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가 학습되고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열정과 노력이라는 말은 와중에 어느새 가슴 뜨거운 단어가 아닌, 나보다 뒤에 있는 같은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조롱하는 의미의 단어로 전락해버렸다. 무슨 일이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최근 영화보다 영화 같은, 믿을 없는 사건으로 곪아 터졌다그렇기에 걷기왕의 만복이 우리에게 제시한 메시지는 더욱 의미가 깊다.

 

꼭 남보다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앞서 가야만 하나? 

 

꼭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는 것이 열정인가? 즐거운 열정은 없는 걸까? 

 

무엇보다그렇게 고통을 참고 버티며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순간만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이고 그런 삶의 방식만이 옳은 방식인가?  

 

나 또한 만복 아니, 그보다는 수지나 담임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은 좋지 않았던 형편 때문에 바쁜 대학시절을 보내야 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계속 주변의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더 잘나가는 친구를 보고 속상해 했다. 내가 우울하니 가족과도 다툼이 잦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놓아버렸다. 평생 이런 감정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한 즐겁고 유쾌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노는 거 안 빼먹으면서, 내 할 일도 열심히 했다. 어느새 주변에서 나는 학업도 챙기며, 알바로 생활비도 벌고, 학교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노는 것도 빼먹지 않는 특이한 놈이 되어있었다. 즐겁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점점 채워지면서 그때 깨닫게 되었다.   

 

 아 이런 게 진짜 열정이구나! ’

 

역설적이게도, 이런 류의 영화에서 가장 닮지 말아야 할 타입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인 만복의 친구, 지현이 가장 영화의 주제와 맞는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로는 그저 우등생에, 공무원을 희망하는 꿈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극중 누구보다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꿈이 공무원이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다그래서인지 오히려 상담 중 담임에게 힘들고 아픈데 왜 맨날 참아야 하냐며 되려 일침을 가한다.     

반대로 담임선생님은 맹목적으로 열정을 외치는 사람이다. 만복을 구박하던 아버지도 나중엔 만복을 걱정하고, 코치도 마지막엔 멋진 말과 함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유독 담임만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유형의 열정에 집착한다. 앞서 언급했던 노력신봉자들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이라고 하겠다.

공교롭게도, 만복을 보면서, 비슷한 제목의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홍만섭이 자꾸만 떠올랐다. 만섭과 만복은 이름 말고도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이다. 만섭도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에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 하면 안되는 거냐고 항변하는 캐릭터이다.     

공무원 준비하라는 선배에게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고, 총장에게 족구장을 다시 만들어 달라 건의하며, 학교에 족구 붐을 일으킨다. 또한 학교 퀸카가 자기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백한다. 필요 없으면 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진 세상에서 그저 가슴 뛰는 대로 최선을 다한다.

아마 만섭과 만복 둘 다, 삶의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에게 알려줬던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우연히도 홍만섭을 연기한 배우 안재홍이 소순이 역할로 특별 출연한다.

 

영화 후반부에 만복을 걱정하는 담임을 달래며 코치는 이런 대사를 한다.

 

인생은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는 과정이다.  

 

똑같은 길에서 남과 경쟁하며, 최고를 꿈꾸는 것에 지쳤다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천천히 여유 있게, 나도 걷기왕을 꿈꿔본다


p.s 

이거 어느회사 입사지원때 과제로 야심차게 쓴 감상입니다. 여태 연락안오는거 보니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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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