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게임.2017. 2. 7. 02:47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장보고전, 충무공전, 퇴마전설 등으로 나름 명가로 불리던 트리거 소프트의 작품입니다. 전작인 퇴마전설에서 세 캐릭터를 마치 RTS 장르의 유닛처럼 드래그하여 동시조종 하기도 하는 등의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인지, 그 후속작인 2탄에 많은 기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돈이 부족하고, 제 마음대로 매번 게임을 사기 어려웠던 학생 신분이었던 저는 나중에 주얼판으로 이 게임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디아블로 2 이후에 나온 게임임에도 그래픽과 사운드 면에서 딱히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마법효과 등의 그래픽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캐릭터들의 엉성한 움직임과, 일반 몬스터와 단지 색깔만 다른 보스급 몬스터들의 성의 없는 디자인, 그리고 같은 회사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들었던 듯한 비슷한 효과음들

동서양을 오가는 거대한 배경과 스토리는 충분히 좋았지만, 게임플레이면에서는 좋지 않았습니다. 스토리 진행중의 중간보스들은 밸런스 테스트도 해보지 않았는지, 이미 지나치게 강해진 주인공 캐릭터의 일격에 쓰러졌습니다

지하 던젼 입구를 클릭하다가 필드에서 공격받으면, 그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얻어 맞는 등의 사소한 버그도 있었습니다. 용병들은 그 다양함과 고용할 수 있는 인원에 비해 비효율적 이었습니다

전작에서 보여준 시스템은 사리지고 한번에 한명씩만 조종할 수 있게끔 바뀌었으며, 이마저도 컴퓨터가 조종할 때는 낮은 인공지능 때문에 없는 편이 훨씬 도움이었습니다. 거짓말 안하고 정말 닭XX리 수준입니다. 차라리 우리집 어항의 구피가 더 지능적으로 움직일겁니다. 때문에 계속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중반부까지 플레이 하다 그냥 멈춰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p.s 

오랜만의 추억으로 다시 꺼내보면 조금 평가가 달라질까 했지만, 아니 오히려 더 나쁩니다. 사실 저정도 그래픽은 그때도 좋지 않았어요. 전체적으로 압박이 있었는지, 서둘러서 내보낸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영화나 게임이나 제작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그닥 좋은 일이 아니지만, 더 좋지 않은 일은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나와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괜찮은 시스템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의 후속작이지만, 전작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고, 당시 인기를 끌던 디아블로2와 어설프게 합쳐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나마 칭찬해주자면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계속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일까요? 제작사인 트리거 소프트는 이후에 인기드라마인 태조 왕건의 후광을 입고 동명의 RTS 작품을 발매하기도 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주목받았지만 발매되지 못한 카오스, 한게임에서 온라인 RTS 작품으로 서비스 되었던 라크무등을 내놓다가 사라집니다.

대중성과 타협하려다 오히려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사례를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봤습니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지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Posted by 건호스
연극.2017. 2. 4. 01:27




춘식의 인생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신장을 떼어냈지만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자기 자신은 고통 속에 사지가 뒤틀리는 마법에 걸린 채 성탑 같은 옥탑방에 갇혀버렸다. 춘식에게 육신은 어떤 방법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춘식의 여자친구였던 영희에 의하면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닌 애초부터 괴물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끝내 행복한 결말을 맡는 왕자와 공주가 아니었다. 이세상이란 동화에서 괴롭고 뒤틀린 역할을 맡은 괴물이었을 뿐이다. 이는 천사로 표현되는 봉사자들의 형식적인 도움과, ‘몸이 그런데도 그게 되냐?’ 면서 춘식을 협박했던 영희의 오빠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에게 춘식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는, 동정 혹은 멸시의 시선만 허용되는 존재였다

춘식은 이러한 자신의 현실에 끝없이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수단이 바로 동화이다. 춘식은 자신을 동화작가로 여기며 자신만의 동화를 써내려간다. 때때로 울분이 동화 전체를 집어삼켜, 잠시 손을 놓다가도 그는 다시 글을 쓴다

이 때 춘식에게 찾아온 것이 수미이다. 수미의 아이는 지금 신장이 녹아내려 죽어가고 있다. 수미에게는 춘식의 신장이 너무나 간절하다. 수미 또한 세상에 외면당한 존재이다. 원해서 행하는 일이 아니지만, 춘식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어찌되었건 자신의 장기를 돈으로 주고 산인간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춘식은 스스로가 동의했음에도, 종종 수미를 위선자라며 조롱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춘식은 수미가 달갑지 않기보다는, 수미를 통해서 온 구원. , 마법에서 풀려날 기회가, 꼭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하는 자기희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비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꼭 마지막에 아버지 왜 절 버리시나이까?’ 라며 절규하던 예수의 모습이 언뜻 떠오르게 한다.) 

수미의 입장에서도 자기 아이의 생명을 두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며 시간을 끄는 춘식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인지 서로 점차 이해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둘은 조금 미묘해 보인다. 애증어린 관계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극 내내 부각되는 선한 자의 의미가 가진 이중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여 진다.

 선한 자에 대한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것이 수미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춘식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수미는 몸은 정상이지만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의 본성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자신의 모습 또한 발견한다. 이 때, 춘식은 마치 정상인처럼 똑바로 서서 똑바로 말하게 되고, 수미는 반대로 춘식처럼 뒤틀린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이 뒤틀린 모습으로 수미는 자기 안에 있던 모든 감정을 토해낸다. 춘식에게도 비판을 가한다. 춘식이 기다리는 선한 자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춘식이 바로 그 선한 자이기 때문이다. 춘식은 남보다 더한 고통을 짊어졌다는 것을 우월감으로 느끼며 세상 모두를 자기보다 행복하다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따지지 않을 테니 제발 여기서 꺼내달라고 애원하다가도, 이 고통을 우리에게 준 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 버리겠다면서 마음속에 있는 울분과 분노를 쏟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선한 자를 신으로 생각하고 극을 이해해 나가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면 신을 찾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어려움을 우리에게 준 것 또한 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앞에서 이야기한 선한 자의 의미가 가진 이중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춘식의 선한 자는 춘식을 마법에서 해방시켜 주겠지만, 그 대가로 춘식의 목숨을 가져가려 한다. 수미의 선한 자는 수미의 아이를 구하게 하겠지만, 그 대가로 수미에게는 춘식을 살해하였다는 죄책감을 남길 것이다. 이렇게 춘식을 육신이라는 족쇄에서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수미는 춘식의 선한 자가 된다. 또한 수미의 아이를 구해준다는 점에서 춘식은 수미의 선한 자이다.

 수미가 춘식의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되었을 때 춘식을 더 주저하지 않고 수술받기를 희망한다. 수미 또한 진심으로 자신의 이름은 애자이며, 동화를 쓸 것이라고 춘식에게 이야기한다. 무면허 의사(?)가 찾아오는 그 시점까지도 수미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막이 넘어가고, 춘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은 채(나는 춘식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수미가 방에서 춘식과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때 누군가 수미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을 보고나면,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은 반어적 표현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색다른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외면해 온 모습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소개된 줄거리만으로는 전형적인 신파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눈물, 콧물 다 짜내는 최루성 전개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 따뜻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명을 구하는 감동의 이야기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그에 동반한 갈등이 나타남으로서 연극을 본 이후에도 계속 곱씹어보게 만드는, 난해하고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고 불쾌한 그런 이야기이다.

 지독하게 비참하고 비극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여 질 수도 있지만,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게끔 하는 것은 냉장고에 사는 아들의 존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냉장고 안에서 얼어붙어 잠을 자며, 언젠가 깨어나 일하기를 기다리는 아들의 모습은, N포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청년층을 대변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혹은 흙수저라는 말로 대변되는, 격차 속에 소외당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그러니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 또한 춘식과 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이모와 이모부, 아들의 대립은 춘식안의 자아의 대립이라 볼 수도 있다. 아들은 종종 세상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말하고, 이모부는 세상에 불이 나게 되면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굴뚝을 찾아다닌다. 이모와 이모부는 춘식에게 남아있는 희망을 상징하고, 반대로 아들은 세상에 대한 춘식의 분노를 상장한다고 보여진다.

 연극을 보면서 카뮈의 에세이인 시지프의 신화를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신에게서 바위를 끝없이 산으로 굴려 올리는 무용한 노동을 형벌로 받은 시지프의 신화를 인용,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내용이다. 카뮈 또한 허약한 몸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그리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시지프를 통해서 신이 준 무용한 형벌을 묵묵히 수행함으로 인해 신을 추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에게 이 고통스러운 형벌을 끝내달라고 애원하는 대신에, 신이 내린 형벌을 형벌로 인식하지 않고 묵묵히 해 나가면서 그 형벌이 지닌 의미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지프는 바위와 자신뿐인 세계에서 신을 추방하고, 바위를 올리는 형벌을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바꾸어 버림으로서 그 스스로가 자신의 세계에서 신이 된다.

 내게는 바로 춘식이 이 시지프와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선한 자가 마법을 풀어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주기만을 기다리던 춘식은, 수미의 아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줌으로써 그 스스로가 선한 자가 되어 고통스러운 마법에서 풀려난다. 영희의 말대로 애초부터 누군가를 구하거나 사랑받을 수 없는 괴물로 운명 지어진 삶이었다 해도, 춘식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동화에서 수미의 아이를 구하는 기적을 행함으로서,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 동화작가라는 일종의 신이 되어 현실의 뒤틀린 괴물이 아닌, 누군가를 구하는 선한 자이자, 동화의 주인공으로서 괴물로서의 현실의 운명을 추방하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춘식이 수미에게 동화를 쓰자고 한 이유는 어쩌면 수미 또한 주어진 운명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이라는 선한 자가 춘식과 수미를 외면하였다면, 춘식이 그러했듯 수미 또한 신에게 고통을 끝내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수미 자신이 동화라는 세상의 신이 되라고 말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한다. 훗날 그 사실을 알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뽑고 방랑한다. 비극적인 삶을 산 그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내가 판단하니 만사가 다 잘 되었다’ 

이 한마디로 그는 신이 그에게 내린 비극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춘식 또한 마지막에 이르러 내가 원했던 결말은 아니지만, 괜찮아라고 말함으로써, 신이 그에게 준 고통스러운 운명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춘식이 수미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죄책감 보다는 일종의 유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수미와 함께 춘식을 보아온 관객, 즉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우리는 수미가 그랬듯이 춘식을 따라서 우리 자신의 동화를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쓴 동화에서 선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고,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야한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동화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춘식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p.s 

15년 마지막 학기에 교양과제로 보았던 연극입니다. 이 연극도 지금은 딱히 공연하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작 그때보다 지금 제 입장에 필요했던 연극 같아요. 당시에는 마지막 대학생활을 화려하게 불태웠죠. 즐거웠습니다. 힘든 때도 물론 많았지만요. 분명 제가 어떻게 살면 즐거웠는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사이 잠깐 길을 잃고 헤멘 기분이 듭니다. 

저도 이제 정신차리고, 멈춰놨던 제 동화를 마저 다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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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2. 2. 22:47


복학생과 족구. 왠지 고학번을 한참 넘긴 나도 멀어지고 싶은, 단어에서부터 땀내나는 듯한 두 키워드로 만들어진 영화 족구왕. 영화는 이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복학생들의 표본을 보여준다.

주인공 만섭은 제대 후 칼복학한, 잘 생기지도 않고, 토익 점수도 없으며, 학점은 바닥이고 여자친구는 더더욱 없는, 지극히 평범한 복학생이다. 그는 복학 전에 학우들과 함께 뛰놀던 족구장이 교내 취업준비생들의 반발로 폐쇄되었음에 절망하고, 총장과의 대화 시간에 이를 직접 건의하기까지 한다.

또한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선배인 공시 장수생 형이 스펙 없는 만섭에게 공무원 공부나 착실히 할 것을 강요하지만, 만섭은 연애가 제일 하고 싶다면서 학교 제일의 미녀인 학교모델 서안나에게 교양과목의 조별과제를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안나에겐 썸을 타는 듯 미묘한 관계에 있는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강민이라는 남자사람친구가 있다. 강민은 안나와 만섭의 조모임을 보고 만섭에게 시비를 걸고, 만섭은 이를 일대일 족구시합을 제안 간단히 제압하며 안나를 차지(?)한다. 이 시합은 한 학생의 직캠으로 전 캠퍼스에 퍼졌고, 얼마 뒤 개최된 체육대회에서는 족구붐이 일어난다.

영화는 대략 체육대회가 벌어지는 한 학기 동안의 대학교가 무대이다. 제목과는 달리 정통 족구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지금 청춘들의 이야기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다들 짠하다. 악역(?)인 듯한 강민도 특별할 것 없이, 고시원에서 월세도 못내고 사는 흙수저로 보인다. 만섭은 등록금 낼 돈도 없어 퇴학처리 당하고, 장수생 형은 한때 족구의 고수였지만, 하라는 공부와 취업준비는 안하고 족구나 하다가 여자친구와 이별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기숙사에 살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로서는 극 중 만섭의 대학생활에 더더욱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청년문제를 만섭을 통해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만섭을 보며 짠해지는 장면이 좀 많았다.

가장 슬픈 장면은 아무래도 퇴학처리 당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등록금을 구할 수 없던 만섭이 결국 학기 중 퇴사 당하게 되는데, 무심한 듯 담백한 연출과 조교의 사무적인 태도, 그리고 만섭의 습관화 된 것 같은 친절한 모습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지나치게 미래만 준비하며 사는 우리와는 달리, 영화속의 만섭은 지금 현재를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족구장 재개 서명운동도 벌이며, 족구대회에도 참가한다. 안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비록 안나는 중간에 마음을 결정하고 강민을 응원하기로 하지만, 만섭은 그렇다고 족구도 안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이미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안나에게 과제 발표를 빙자한 멋진 고백을 하고, 발에서 피가 나면서도 족구를 한다. 결국 강민의 토목과를 제압하고, 식품영양학과를 족구대회 우승에 올려놓으며 족구왕이 되는 만섭. 하지만 안나는 그와 상관없이 강민에게 가버리고, 만섭은 쓰게 웃으며 그것을 바라본다.

성공만을 중요시하는 풍토, 이를 위해 항상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는 인식. 주인공 만섭을 통해 영화족구왕은 이에 의문을 던진다.

그저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건 안되는지,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뛰어보면 안되는지 말이다.


P.S 기억에 남는 명대사도 많고 안나와 만섭 공시생 형과 고깃집 여사장님등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몇 번 마음가는대로 쭉 쓰다가 글을 지웠습니다. 일일이 블로그를 통해 설명하기 보단, 직접 보고 느끼시는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대학! 청춘! 낭만! 여러분의 캠퍼스 라이프를 회상하며 족구왕을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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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