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불청객 - 스포일러
영화.2017. 1. 31. 20:26





간만에 본 제대로 된 SF영화.


SF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이런 영화들이 심심찮게 나와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딸랑 자취방이다.

주인공은 빨간티의 고시생, 파란티의 취업준비생, 녹색티의 취업준비생 이 셋이다.
이들은 '잉여'라는 말 외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제일 맏형인 고시생은 자기 자신은 저 두 잉여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나, 그것도 자기 생각일 뿐, 공부는 뜻대로 안되고 시간은 가고, 그도 잉여인간 인건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그들이 잉여적 삶을 영위하던 중, 은하계어딘가의 '론리스타금융회사(?)'란 곳에서

그들의 자취방으로 정체불명의 택배가 배달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별 생각없이 택배를 뜯어버리는 파란티.

그러자 그 안에서 자칭 '은하계의 지배자' 포인트맨이 튀어나온다.

포인트맨은 세명의 잉여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고객이며 포인트를 열심히 적립하면

그 적립된 포인트만큼 영원한 삶(???)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세 잉여들의 반응은 뜨듯 미지근하다. 이에 열이 받은 포인트맨은 욕을 하며 그들을 자취방 째로 우주에 내던진다.

"
성공한 정치인과 사업가들을 욕하면서, 정작 자기 스스로는 
그들을 따라잡으려 어떠한 노력도 안하는 것들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 너희들은 잉여인간이다

백만루트마이크로2우주시간 뒤에 돌아오겠다!"

말도 안되는 일로 우주에 던져졌음에도 여전히 방구석에서 잉여짓을 일삼는 주인공들.

그나마 맏형 고시생만 공부를 하려고 하고, 파런티는 그저 게임이나 하고 앉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공부가 될 턱이 있나.... 결국, 책상의 법률책을 싸그리 치워버리고 무전기를 만들어내 교신을 시도하는 고시생.

우연히 우주에 떠도는 국회의사당(이게 왜 여기에...)을 발견하나, 교신을 하기도 전에 국회의사당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그 뒤, 게임이나 하고 있는 파란티가 못마땅했던 고시생과 그 파란티 간의 다툼이 벌어진다.

"
게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날 좀 내버려 둬, 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죽일듯이 서로에게 덤벼드는 두 사람.
녹색티는 그들을 말릴 용기도 없이 그저 이 상황을 잊으려 리코더나 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때, 우주 밖에서 난데없는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자취방 창문을 깨며 유리병 하나가 자취방으로 들어온다. 놀라 그들을 바라보는 백수들에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가버리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그 유리병 안에는 포인트맨의 정체와
포인트맨의 약점이 적혀 있는 찌라시가 들어있었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세 백수들은 의기투합하여포인트맨을 처치하고 자취방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이후
백만루트마이크로2우주시간(...)이 지나고, 포인트맨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맏형 고시생은 포인트맨과 함께 자폭하고, 두 동생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 두 동생은 지구로 돌아가던 중, 우주를 떠도는 또다른 자취방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들이 도움 받았던 것과 같이 결연한 표정으로 유리병을 자취방으로 던진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돌아온 그들. 꿈인가 싶지만 고시생 형은 없다.

남겨진 건 형의 빨간 모자 뿐....

파란티는 비장한 모습으로 그 빨간 모자를 꾹 눌러쓰고, 두 백수는 자취방 문을 열어 세상 밖으로 나간다.

열심히 일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백수들은 다시 삶의 열정을 깨닫는다.

그렇게 두 백수가 모든 생명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그리고 우리 20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감독 또한 그저 평범한 취업준비생 이었으나, 연달아 취업에 실패하고, 대학 동아리 형들과 함께 이 영화를 기획했다 한다영화를 찍으려고 부모님께 수백만원을 빌리기도 했다고... 감독의 그런 힘겨운 배경이 있어서인지, 영화의 유머는 B급정서와 풍자로 가득하면서도 그 안에 뼈대가 단단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백수들은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으나 정체불명의 피리일당이 던져준 유리병을 받고 난 뒤 전환점을 맞는다. 재미있는 점은, 그 피리일당들도 포인트맨을 물리친 뒤의 두 백수들도 유리병을 던져 주기만 할 뿐 직접 도와주지는 않는다. 아마 다른 백수들(어쩌면 관객)또한 그들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기를 원한 것 같다.

악당인 포인트맨도 알고 보면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그는 자칭 은하계의 지배자이지만, 사실은 론리스타금융회사의 말단 영업사원일 뿐이다. 게다가 못생겼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한 명 없다. 그 또한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그런 자신에 대한 컴플렉스와 자기비하가 엄청나다. 세명의 백수들이나, 포인트맨이나사실 루저인건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 무시무시하게 발달한 지금

우주에 홀로 떨어진 자취방과 

현실세계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보고있는 우리들


다를 건 없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큰 우주는 생각 하지도 않고, 그저 이 좁은 방구석에서 잉여력이나 충전시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방 한 구석에 앉아서 쉽게 세상을 이야기하지 말고 밖으로 뛰쳐나오라고 하는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때, 좌절할 때마다 왠지 굳은 표정으로 자취방 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서는 두 백수들이 떠오를 것 같다.


P.S 싸이월드 블로그에 게시되어있던 글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기억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영화인데도 그 메세지에 아직도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 씁쓸하네요. 취업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이제는 취업해서도 행복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포인트맨도 그저 평범한 미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디선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그저 일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참고 있을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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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