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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2017. 2. 2. 01:04


원작을 2인극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노인, 소년이 전부이다.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유머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극에 몰입하게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관객을 무대 소품 내지는 조연들로 활용한다. 덕분에 유쾌하게 웃으며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나도 엉겁결에 밧줄 잡아당기고 있었음.

(예를 들어, 관객을 물고기로 가정하고 낚시에 걸린 척 밧줄을 잡아 당겨 달라 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노인이 꿈 속에서 아프리카를 회상하는 장면과, 포기하지 않겠다는 직접적인 대사 이 두가지만 추가 된 것 같다.

원작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어를 낚은 노인이, 돌아오는 길에 결국 상어 떼 들에게 공격당하고 만다. 고기를 다 뜯기고 마지막에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 결국 성공을 갈망하며 쟁취하기도 하고, 한 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는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노인과 상어 떼들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치이고 또 치이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연극에서는 원작의 주제에서 생각을 더 확장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듯하다. 극의 마지막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노인은 피곤에 지쳐 곧바로 잠이 들지만, 그 속에서 다시 아프리카를 꿈꾸며 희망을 갖는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이 연극을 보며 다시금 실감했다. 영화야 한번 찍고 나면 그만이지만, 연극은 극을 시작할 때마다 매번 처움부터 끝까지 연기해야 하니 소모되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닐 것 같다. 관람하는 내내 두 배우의 열연이 생생히 느껴졌다. 원작의 감동을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었다면 연극 또한 적극 추천한다.


p.s 

싸이월드 블로그에 있던 글을 다시 게시합니다.

6년 전쯤에 휴가 나와서 친구랑 같이 본 연극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공연하는 곳이 없네요. 다시 공연되었으면 하는 연극인데 아쉽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소년의 독백 혹은 회상을 통해 노인의 이야기를 대신 전합니다. 위에서 2인극이라 언급했는데, 정말 소년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상어부터 별의별 모든 역할들을 맡아서 진행합니다. 

원작에서는 사람들이 물고기의 뼈를 보며 무심히 대화하며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연극에서는 그 대신 노인이 다시 꿈을 꾸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꿈을 꾸고 도전하잖아요? 

예전에는 너무 큰 욕심을 내고 허망하게 그것을 잃어버리는, 인생무상이 주제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른 생각도 듭니다. 그저 노인에게는 그 큰 청새치가, 뼈만 남겨 가져오게 되더라도, 절대 내어줄수 없는 노인의 꿈 혹은 노인 자신이지 않았나 싶네요.


마지막에 얼마나 남아있을진 모르겠지만, 

저도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제 물고기를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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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1. 31. 20:26





간만에 본 제대로 된 SF영화.


SF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이런 영화들이 심심찮게 나와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딸랑 자취방이다.

주인공은 빨간티의 고시생, 파란티의 취업준비생, 녹색티의 취업준비생 이 셋이다.
이들은 '잉여'라는 말 외에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제일 맏형인 고시생은 자기 자신은 저 두 잉여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나, 그것도 자기 생각일 뿐, 공부는 뜻대로 안되고 시간은 가고, 그도 잉여인간 인건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그들이 잉여적 삶을 영위하던 중, 은하계어딘가의 '론리스타금융회사(?)'란 곳에서

그들의 자취방으로 정체불명의 택배가 배달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별 생각없이 택배를 뜯어버리는 파란티.

그러자 그 안에서 자칭 '은하계의 지배자' 포인트맨이 튀어나온다.

포인트맨은 세명의 잉여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고객이며 포인트를 열심히 적립하면

그 적립된 포인트만큼 영원한 삶(???)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세 잉여들의 반응은 뜨듯 미지근하다. 이에 열이 받은 포인트맨은 욕을 하며 그들을 자취방 째로 우주에 내던진다.

"
성공한 정치인과 사업가들을 욕하면서, 정작 자기 스스로는 
그들을 따라잡으려 어떠한 노력도 안하는 것들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 너희들은 잉여인간이다

백만루트마이크로2우주시간 뒤에 돌아오겠다!"

말도 안되는 일로 우주에 던져졌음에도 여전히 방구석에서 잉여짓을 일삼는 주인공들.

그나마 맏형 고시생만 공부를 하려고 하고, 파런티는 그저 게임이나 하고 앉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공부가 될 턱이 있나.... 결국, 책상의 법률책을 싸그리 치워버리고 무전기를 만들어내 교신을 시도하는 고시생.

우연히 우주에 떠도는 국회의사당(이게 왜 여기에...)을 발견하나, 교신을 하기도 전에 국회의사당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그 뒤, 게임이나 하고 있는 파란티가 못마땅했던 고시생과 그 파란티 간의 다툼이 벌어진다.

"
게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날 좀 내버려 둬, 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죽일듯이 서로에게 덤벼드는 두 사람.
녹색티는 그들을 말릴 용기도 없이 그저 이 상황을 잊으려 리코더나 불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때, 우주 밖에서 난데없는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자취방 창문을 깨며 유리병 하나가 자취방으로 들어온다. 놀라 그들을 바라보는 백수들에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가버리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그 유리병 안에는 포인트맨의 정체와
포인트맨의 약점이 적혀 있는 찌라시가 들어있었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세 백수들은 의기투합하여포인트맨을 처치하고 자취방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이후
백만루트마이크로2우주시간(...)이 지나고, 포인트맨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맏형 고시생은 포인트맨과 함께 자폭하고, 두 동생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 두 동생은 지구로 돌아가던 중, 우주를 떠도는 또다른 자취방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들이 도움 받았던 것과 같이 결연한 표정으로 유리병을 자취방으로 던진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돌아온 그들. 꿈인가 싶지만 고시생 형은 없다.

남겨진 건 형의 빨간 모자 뿐....

파란티는 비장한 모습으로 그 빨간 모자를 꾹 눌러쓰고, 두 백수는 자취방 문을 열어 세상 밖으로 나간다.

열심히 일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백수들은 다시 삶의 열정을 깨닫는다.

그렇게 두 백수가 모든 생명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그리고 우리 20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감독 또한 그저 평범한 취업준비생 이었으나, 연달아 취업에 실패하고, 대학 동아리 형들과 함께 이 영화를 기획했다 한다영화를 찍으려고 부모님께 수백만원을 빌리기도 했다고... 감독의 그런 힘겨운 배경이 있어서인지, 영화의 유머는 B급정서와 풍자로 가득하면서도 그 안에 뼈대가 단단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백수들은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으나 정체불명의 피리일당이 던져준 유리병을 받고 난 뒤 전환점을 맞는다. 재미있는 점은, 그 피리일당들도 포인트맨을 물리친 뒤의 두 백수들도 유리병을 던져 주기만 할 뿐 직접 도와주지는 않는다. 아마 다른 백수들(어쩌면 관객)또한 그들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기를 원한 것 같다.

악당인 포인트맨도 알고 보면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그는 자칭 은하계의 지배자이지만, 사실은 론리스타금융회사의 말단 영업사원일 뿐이다. 게다가 못생겼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한 명 없다. 그 또한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그런 자신에 대한 컴플렉스와 자기비하가 엄청나다. 세명의 백수들이나, 포인트맨이나사실 루저인건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 무시무시하게 발달한 지금

우주에 홀로 떨어진 자취방과 

현실세계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나 보고있는 우리들


다를 건 없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큰 우주는 생각 하지도 않고, 그저 이 좁은 방구석에서 잉여력이나 충전시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방 한 구석에 앉아서 쉽게 세상을 이야기하지 말고 밖으로 뛰쳐나오라고 하는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때, 좌절할 때마다 왠지 굳은 표정으로 자취방 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서는 두 백수들이 떠오를 것 같다.


P.S 싸이월드 블로그에 게시되어있던 글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기억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영화인데도 그 메세지에 아직도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 씁쓸하네요. 취업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이제는 취업해서도 행복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포인트맨도 그저 평범한 미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디선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그저 일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참고 있을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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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여행.2017. 1. 24. 23:06


내가 이리카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1. 군대를 전역하고 아직 빡빡머리가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때였다. 나보다 늦게 군대를 가기 시작한 친구들이 슬슬 전역을 앞두고 홍대 앞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아직 사회물(?)을 덜 먹어서 사람이 많고 핫한 홍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친구가 자신 있게 자기가 좋은 카페를 알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고 했다. 홍문관을 지나 홍대주변보다 훨씬 한적한 상수역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난 친구의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에 세발자전거 타며 구석구석 돌아다녔을 것 같은 평범한 골목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마치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않은 듯 신경 쓴 이리카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마치 군 복무시절 즐겨보던 남성잡지에서나 소개되던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어디 헌책방과 재개발단지라도 털어온 것인지, 테이블부터 의자, 책장, 그 안에 꽂혀있는 헌책들까지 하나같이 다 자기만의 앤틱함을 발산하며 그 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강렬했는데, 마치 스트리트 패션 잡지에서나 볼 법한 홍대인의 자부심을 세우며, 맥북을 펴놓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은 우리도 그 예술적인 무리에 편입된 것 같은 감성을 충만하게 느끼게끔 해주었다.

 

처음엔 적잖이 컬쳐쇼크를 먹은 나였지만, 이내 그 분위기에 흐물흐물 녹아들어갔고,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여자가 생기면 꼭 같이 오겠노라 다짐하였다. 친구도 알고 보니 마음에 두고 있었던 대학선배가 끌고 왔던 곳이라고... 역시나 짝사랑에 얽힌 장소는 더욱 기억에 남는 법이다.

 

그 뒤로, 내게 누군가 홍대 괜찮은 곳 좀 아냐?‘ 고 물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비장의 카드가 되어주었다. 실제로도 마치 어서 돈을 쓰고 나가라는 듯 대로변에 우악스럽게 자리한 수많은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보다 이쪽이 훨씬 분위기 있고 조용히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이유로 항상 자주 들리지는 못해도 가끔씩 멍하니 앉아서 힐링할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마음 아픈 것은 이 사랑스러운 카페가 가장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란 점이다. 이미 서교동에서 상수로 한차례 피난을 와 터를 잡았건만, 지난 2월 또 이사를 가야할지 모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장소를 핫플레이스로 만들어준 장본인이 결국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리를 밀어낸 자리에 또다시 의미 없는 프렌차이즈가 들어온다고 과연 지금 같은 생명력을 지닐 수 있을까. 그럴거 라면 차라리 우리집 뒷마당으로 이리 오라 손짓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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