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2017/02 글 목록 (2 Page)
영화.2017. 2. 14. 20:51



이혼 후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는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제법 재산이 있는 듯한 행세를 한다

그러나 이를 알고 있던 웅변학원 원장이 신애의 아들을 유괴하고, 아들은 결국 죽고 만다. 신애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친다. 넋이 나간 상태로 살다가, 우연히 시선이 닿은 교회에 들어가 통곡하는 신애. 그 뒤로 종교를 통해 안정을 되찾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로 찾아갔건만, 사형수인 웅변학원 원장은 너무나 편안한 표정과 말투로, 자기도 교도소에서 하느님을 만났으며, 심지어는 하느님께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피해자인 신애는 아직 고통속에 살고 있는 것에 비하여, 너무나 대조적으로 평안한 가해자의 모습

비록 모든 사람에게 종교는 평등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는 종교적 모순과 이에 따른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인 신애가 마음을 열어 용서하기 전에, 신이 먼저 그 가해자의 죄를 사하고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관객도 같이 고민해보게 한다.

이후 신애는 우연히 길가에서 양아치에게 얻어맞는 학원원장 딸과 눈이 마주치지만 이를 방관하고 지나간다. 그 후로, 신에 분노하고, 신을 부정하기 위한 신애의 행동이 이어진다.


- 부흥회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틀기.

- 조용한 교회에서 마구 책상을 두드리고 소리 지르기.

- 집회에서 난동, 다른 집회가 진행 중인 아파트 창문에 돌 던지기.

- 신실한 약국주인 장로 유혹. 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밖에서 하자(?) 제안하나, 장로는 하느님이 보고 계시는 것 같   다며 끝내 거부하고 실패하자 신애는 구토를 한다.

- 다음으로 송강호를 유혹 하려하나 송강호 또한 거부.

- 차들이 마구 다니는 도로 한복판으로 걸어가기. (허나 죽지 않음.)

- 이 모든 것들이 실패로 끝나자, 마지막으로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를 한다.


허나 죽지 않았고, 퇴원 후 들른 미용실에서 웅변학원 원장의 딸과 조우한다. 신애의 머리를 다듬어 주며, 죄송하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등, 눈물 짓는 모습으로 보아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애는 눈물 짓는 아이를 보았으나, 용서의 말이나 위로 따위는 없이, 그냥 미용실을 뛰쳐나온다. 집에서 자르다 만 머리를 혼자 손질하고, 그 곁에는 전과 같이 송강호가 거울을 비춰준다. 그 둘을 뒤로하며 영화는 마당에 자라는 새싹을 비춰주며 끝.


영화상에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이 소녀의 남은 인생은 충분히 가혹할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른 나이의 소년원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학교는 이미 중퇴한 상태이다. 소년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긴 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미성년자로서 연고자 없이 살아갈 이 소녀의 일생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은 가해자에 대한 징벌 없는 용서를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가혹할 수도 있다. 영화상에서 학원원장의 딸은(범죄에 완전히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의 지시로 망을 봤다.) 자기 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정상적인 아이들이 누렸어야 할 일상에서 박탈당했다

비록, 사형당한 학원원장은 개인적으로는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죄는 살아남은 딸이 전부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한다. 또한 후반부의 장면을 통해 딸이 충분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는 신애가 용서하지 않는 한은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받아야할 벌을 세상에서 대신 받고 있을 딸의 모습을 보며, 웅변학원 원장은 저승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신은 피해자인 신애에게서 용서의 권리를 앗아가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고 다시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영화 마지막에 새싹을 비춘 것은 아닐까?


P.S

학교 과제 발표를 위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요약 정리했던 것을 글로 다시 옮겼습니다. 때문에 좀 어색한 면이 있네요. 과제를 위해 여러번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 나름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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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게임.2017. 2. 13. 20:44



문명의 개발자 하나인 브라이언 레이놀즈가 개발한 게임으로 문명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결합이라고 있는 게임. 게임성이 절묘하다. 사실 실시간 문명이라고 하는 적합하다. 문명만큼이나 다양한 난이도로 도전욕구를 자극한다.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세계정복 모드는  옛날 학창시절, 코에이 삼국지를 플레이하며 수업 중국 지도 그리고 딴생각하던 추억을 떠올리게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래픽은 당시에도, 스팀에서 익스텐디드 에디션이 발매된 지금에도 미묘하다. 3d 2d 혼합으로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의 건물과 3d 디자인된 유닛, 그리고 3d 지형에 2d 지형 지물을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3d 기술이 과도기였던 시기였고, 또한 RTS 장르에서는 고사양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기라 이러한 그래픽을 사용하게 같다.

때문에 엠파이어 어스등의 3D RTS보다 훨씬 이쁜 비주얼을 보여주지만, 미묘하게 사양이 높은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는 하지만, 당시에도 미묘하게 사양이 높았고, 지금 익스텐디드 에디션이 되면서도 사양이 제법 높아 저가형 컴퓨터에서는 돌리기 버거울수도 있다.  

굳이 건물은 2D, 유닛은 3D 채택하였는지는 아리송하다. 게다가 당시에 이미 앙상블 스튜디오에서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통해 3D로도 얼마든지 어여쁜 비주얼을 선사할 있음을 증명한지라, 애매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같은 유닛이나, 건물이라도 문명별로 각각의 고유한 스킨을 적용시킨 점은 충분히 시대를 앞서갔다고 있다. 당시의 역사물 게임들이 시대별 구분만, 혹은 문화권 별로 엮어 디자인을 하는 등의 결과물을 보여줬다면, 이상의 노력을 들인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사운드는 매우 역동적이고 희망찬 배경음악이 인상깊다. 역동적인 문명의 기상이 느껴지는 BGM 게임의 분위기를 더해주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효과음이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만약 배경음악을 끄고 게임을 플레이하면 종소리, 으엑, , 정도의 효과음만 들리는 고요함을 체험할 있다.

 

게임이 가진 진정한 강점은 바로 게임플레이이다. 그래도 평균 이상은 해주는 그래픽과 사운드에 이러한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가 더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에게 기억되는 고전 명작으로 자리매김 있지 않았나 싶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튜토리얼 모드 외에 시나리오라고 만한 것이 없다. 대신 문명을 플레이 하듯 난이도를 선택 , 세계지도에서 정복 혹은 목표요건을 채우기 위한 플레이를 실행하게 된다. 이는 마치 삼국지를 아주 간편하게 만들고, 전투 부분은 일반적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류의 RTS 진행하게 하는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둘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한 중독성을 선사한다. 확장팩인 쓰론 패트리어트에서 세계정복모드가 세분화되었는데 부분적인 세계를 점령하는게 끌렸다. 알렉산더 시절 헬레니즘 시대 영역, 나폴레옹 시기, 대항해시대 북아메리카 일대, 냉전 시대 그리고 전체 세계정복까지 플레이어의 입맛대로 원하는 시기를 정복할 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보다는 문명의 실시간 버전이라 있는 이유로, 일단 게임 시작 근간이 되는 것은 건물이 아닌 도시 단위이다. 게이머는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그리고 영향권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필연적으로 추가적인 도시 건설을 강제 당하며, 이를 통해 치열한 공방전을 유도한다. 도시를 잃거나 영토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큼 자원수급이 어렵고, 유닛을 회복시킬 공간이 적으며, 이는 게임의 패배로 이어진다.

업그레이드가 매우 중요한 또한 이유라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보다 시대 발전이 매우 중요한데, 전체 시대 업그레이드는 물론이요, 기술 단계별로 획득할 있는 자원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이미 밀릴 밖에 없다.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고 물량으로 승부하는 전략을 구상하기가 어렵다.

 

당시 비평적으로도 높은 평가들을 받았고, 수상도 제법 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리고 리뷰를 작성하며 알게 사실인데 오리지널과 확장팩 포함 1백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영문 위키피디아와 빅휴즈 게임즈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빅휴즈 게임즈는 게임 이후로, 스팀펑크 판타지 세계관의 후속작 라이즈 오브 레전드, 그리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두번째 확장팩인 아시아의 왕조 등을 제작하였으며, 최근에는 넥슨과 함께 모바일 게임 도미네이션즈를 개발하였다. 나름 인기가 높았던 게임의 정식 후속작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P.S

스팀 평가에도 그대로 업로드 한 글입니다. 게임의 진정한 본질은 외적인 요소가 아닌 게임성임을 이 게임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실 어떤 것이든 본질적인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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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독서.2017. 2. 13. 14:00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이 책은 저자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협상코스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써, 책 소개에 의하자면 와튼스쿨 학생들 사이에서는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것으로 통한다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한다. 책에서는 진짜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이 겪은 풍부한 실제 사례들을 예시로 들며, 교수의 강의 내용을 차례로 정리하며 보여준다.

 

책 전반에서 강조하는 주제를 크게 3가지로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목표에 집중하라!

상대방을 파악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라!

표준과 그에 따른 프레이밍을 활용하라!

 

목표에 집중하라.

 

말 그대로 협상을 하게 된 본래의 목표에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 별 것 아닌 이유로 인해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도 그냥 포기하고 지나칠 때가 많은데, 저자는 아예 처음부터 목표 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한다. 오로지 온전하게 목표에만 집중해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지 아닐지는 미지수이다.

 

이것은 비단 협상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요즘 흔히 쓰이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써, 인생에서도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향해 주저 말고 행동하라는 뜻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라.

 

사실 책에서는 상대방 파악, 인간적인 접근, 타인의 목표를 먼저 이루어주기, 절대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기, 3자 활용하기 등 여러 세분화된 전략들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책에서 제일 많이 언급되는 것은 협상 상대자에 대한 파악과 배려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영화나 각종 매체 등에서 등장하는 사생결단식의 으름장을 놓는 것은 협상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오히려 목표를 이루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 주장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공언하는 위쪽 괴뢰정권을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폭력과 강압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표준과 그에 따른 프레이밍을 활용하라!

 

또한 상대방이 정한 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상대방이 정한 표준이란 상대방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관에 의하여 정한 표준일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직장에서 내건 표준일수도 있다. 프레이밍은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표준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뜻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여행을 나간 사람이 예약한 호텔 객실에서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화장실 바닥에는 개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그 사람은 프런트로 항의전화를 했다.

 

여기가 oo시에서 최고로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최고의 서비스에 화장실 바닥에 우글거리는 개미도 포함된 겁니까?’

 

위에서 손님은 호텔이 정한 기준에 대하여 먼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은 표준을 확인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그 다음 최고의 서비스에 개미도 포함된 것인지를 묻는 부분이 바로 프레이밍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무턱대고 화를 내겠지만, 표준에 따른 프레이밍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고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허나, 책의 모든 내용에서 공감하고 반성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도 매주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저자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협상하여 혜택을 줄 만한 권한이 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협상하라고 수차례 독자들에게 권고하지만, 책 어디에도 저자 자신이 직접 서비스업계의 일선에서 일해 보았다는 말은 없다.

 

, 어디까지나 고객인 자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그 정도 권한은 있다는 추측을 토대로 밀고 나가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상사(혹은 사장)와 고객의 중간에 위치해있는 직원의 경우, 책의 수많은 협상 성공사례를 보여준 사람들은 꽤나 피곤한 사람유형 중 하나다.


성공하여 혜택을 얻은 사람들이야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앞에서는 웃던 그 직원들이 뒤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짜증과 욕설을 내뱉고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표준과 프레이밍(물론 저자는 감정적인 지불과, 인간적인 대화 등을 통해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충분히 강조하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것은 매우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은 자칫 잘못하면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고객만족도를 매우 중시하는 한국의 서비스 풍토로 봤을 때, 표준을 내세우며 자기 잘못은 덮고 이익만 잔뜩 챙겨가는 고객들을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p.s

3학년 즈음에 과제로 작성한 감상입니다.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배운 거라면, 친절함과 존중을 먼저하는 자세랄까요? 100%는 아니지만, 자주 도움된 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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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  (0) 2017.03.01
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2. 9. 23:40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작품입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위대한 유산’, ‘이투마마’,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그리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래비티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중학교 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된 감독 이구요. 분수대 키스신으로 유명한 위대한 유산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 작품이었는지는 저도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네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흥행은 그리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제작비 7600만 달러를 들여서, 전 세계 흥행이 겨우 약 7000만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다지 큰 손해는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흔히 손익분기점을 제작비의 2배 정도로 보기 때문에, 칠드런 오브 맨의 경우에는 약 15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어야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7~8000만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아마 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밝은 편이 아니고,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도 아니어서 일반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고 바로 DVD로 발매 되었습니다. 제가 SF에 관심이 많아서 당시에 SF 관련 커뮤니티 등을 자주 둘러봤는데, 당시에 평가가 좋은 SF 작품이라고 몇 번 언급이 되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해리포터 감독의 숨겨진 명작이라면서 말이죠. 그때는 제가 제대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류가 전부 불임이 되고 아이가 없다는 것을 인류가 전부 늙고 노인이 되었다는 설정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좀 황당하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다행히 매우 늦긴 했지만, 10년 뒤인 작년 9월 국내에서도 개봉하게 됩니다.

 

지금 와서 영화를 보면, 영화가 굉장히 앞서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저 출산과 인구 고령화야 당시에도 많이 논의되던 사회적 문제였지만, 영화의 갑작스러운 난민 증가는, 아무래도 IS로 인한 지금의 대규모 유럽 난민 사태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끔 합니다. 무대가 영국인지라, 게다가 영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니! 브렉시트 문제 또한 안 떠올릴 수가 없죠.

 

칠드런 오브 맨을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하면 자동완성으로 롱테이크가 붙을 정도로 이 영화의 롱테이크 장면 또한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비티의 우주 롱테이크 장면은 이 영화를 통해 다져진 내공이 발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유튜브 등에서 제작과정을 담은 동영상 등을 찾아보면, 촬영을 위해 자동차를 이리저리 개조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초반부 폭도와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후반부의 시가전 장면 등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이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좀 더 현실적이고 몰입감을 더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치 일인칭 슈팅(FPS) 장르의 게임을 할 때 느끼는 몰입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출산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영화에서 테오의 대사를 통해 느꼈어요. ‘100년 뒤면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으나?’ 그 대사를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더라구요. 항상 핵폭발이나 좀비, 외계인 같은 엄청난 대재앙만 떠올렸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이 없어도 인간의 수명은 한정적이란 말이죠. 다음 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게 쓸쓸하고 무서운 일일 줄이야. 그런 점에서 칠드런 오브 맨이 그린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사실 지금 현실과 별다를 것도 없네요.

 

이 외에도, ‘칠드런 오브 맨이 구축한 미래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호기심이 계속 떠오릅니다. 자살약이나, 영국 본토도 다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좀 의문이 드는 것이, 유일하게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영국이라면 과연 미래호는 어디서 온 걸까요? 여행도 여행증을 구해야만 다닐 수 있는 사회에서, 배가 움직인다?

 

초반부 미술관장의 호화로운 모습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인간 프로젝트도 그렇고, 철저히 통제된 사회 또한 그렇고, ‘28일 후의 영국처럼 고립된 지역이거나, 아니면 이퀼리브리엄리브리아처럼 국민들이 국가에 통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전으로 다른 세계가 오히려 멀쩡하다면 그때는 브이 포 벤데타브이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설 ‘1984’의 작가인 조지 오웰도 영국인 이었네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생각났습니다. 작 중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설국열차에서는 기후 변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아기 출산과 같은 일이 기적이자 희망이 되는 요소인 점. 그리고 한 때는 별반 정의롭지 않던 주인공이, 어떠한 일을 계기로 주도적으로 변하는 모습. 비슷한 유형의 장르여서 그런지 은근히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시가전이 한창인 와중에 테오와 키가 아이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군인, 민간인, 피쉬당 테러리스트 할 거 없이 경외하는 표정으로 싸움을 멈추는 모습일 겁니다. 영화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괴 아닌 생명을, 전쟁 아닌 평화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죠.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나오는 ‘Shantih(샨티)’ 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 어로 평화를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노예12년' '마션'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요새 자주 나오는 추이텔 에지오포가 나옵니다. 선한 듯 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맡은 모르도 역할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아무튼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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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게임.2017. 2. 8. 23:02


시점은 탑 뷰(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워크래프트2를 떠올리면 된다.)이지만, 3d로 지형의 고저차와 공중 유닛의 선회, 탄환 궤적까지 구현되어 지형에 따라 데미지가 막히기도 했던,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앞서 간 게임이었던 토탈 어나힐레이션.

그 후속작인 토탈 어나힐레이션 킹덤즈와 그 확장팩인 아이언 플레이그는 그 후 배경을 판타지로 바꾸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타이베리안 선과 스타크래프트 등이 각축을 벌이던 RTS 장르의 황금기에 출시되었던 게임이다.

내가 이 게임을 접하게 된 것은 11살쯤, 시내에 있던 한 대형 서점의 게임 매장이었다. 주얼판(게임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불법복제가 성행하던 우리나라에서 탄생된, 재고가 남은 패키지 게임을 저가에 덤핑하는 판매방식이었다.)으로 구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발매시기에 비해 꽤 재빠르게 저가형으로 재발매 되었던 것 같다. 정말로 흥행이 말이 아니었나보다.

전작인 토탈 어나힐레이션의 성공과 명성으로 주목할 만한 제작사로 발돋움했던 케이브독은,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 게임의 흥행 실패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허나 이런 세상의 평가와는 달리, 나는 희한하게 이 게임에 애정이 깊다.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내 성향과도 잘 맞았기도 하고, 스타크래프트의 아류 일색이던 당시의 게임판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던 장인의 풍모 같은 게 느껴 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나 같은 게이머들이 없지는 않았는지, 고전게임을 디지털화 하여 재발매 하는 사이트인 GOG.COM 에서도 다시 발매되었다.

비록 당시 3D 그래픽의 한계로 유닛과 건물의 외형은 네모난 목각인형과 다를 바 없지만, 각각 종족의 개성을 잘 구현하고 있다. (중세 봉건, 악마, 야만인 무리, 해상왕국 등 확장팩의 크레온 종족도 합하면 스팀펑크까지) 여기에 나름 미려한 지형 그래픽이 어우러지면, 작은 판타지 세계를 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자아낸다. 특히 드래곤 등의 공중 유닛이 날갯짓을 하며 선회하고 싸우는 모습은 지금 봐도 꽤 공들인 티가 나는 연출이다. 사실 기술이 발전한 지금까지도 RTS 장르에서 공중 유닛의 동선을 이만큼 공들여 만든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 노력이 결코 모자란 작품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배경음악은 중세풍의 우아한 느낌을 잘 살려준다. 종족마다 다른 테마로 곡 수가 그렇게 많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나, 그래픽과 함께 한층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그에 비해 유닛 음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효과음 또한 심심한 수준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우아한 배경음과 정적인 효과음이 합쳐져 졸음을 유발한다는 평도 있었다.

게임이름답게 모조리 전멸주된 내용이던, 전작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이번 작품에서는 하나의 큰 서사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싱글 플레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수채화와 중세풍의 스케치로 이루어진 원화와 영상이 브리핑과 컷씬으로 활용되어 몰입감을 높인다. 단지 아쉬운 것은 게임 내 연출을 강화하던 당시 트랜드와 달리 게임 내적인 면에서는 시나리오적 연출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이 게임을 더욱 심심하게 느끼게 했을 것 같다.

스토리는 그에 반해 매우 좋다. 마치 왕좌의 게임을 보는 듯, 생긴 것은 마냥 정의로워 보이는 종족이 가장 배반이 잘 일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동맹을 약탈하며 악의무리처럼 생긴 종족이 오히려 단합이 잘 된 모습을 보여준다. 4종족이 두 패로 나뉘어 싸우는 것이 오리지널의 스토리이고, 공통의 적인 크레온이라는 침략자에 맞서 이합집산 하는 내용이 확장팩인 아이언 플레이그의 스토리이다. 후속작을 염두한 것인지 스토리는 완벽히 종결되지 않고 열린 결말의 형식으로 나아간다. (크레온을 물리치지만, 그 과정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한 종족은 많이 위축되고, 오리지널에서 패배했던 두 종족은 이 기회를 틈타 재기한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는 독자성을 많이 추구했다. 자원 수집을 최대한 간략히 하며,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유닛 컨트롤을 세세하게 신경쓰기 보다는 좀 더 크게 전략적인 방향에 집중하게끔 유도했다. 시야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거리와 시야가 차이가 나는 유닛이 많아, 비행 유닛이나 정찰 유닛이 시야를 확보하고 투석기 등의 포병 유닛이 지원을 하는 다양한 유닛 조합을 통한 전략적인 플레이를 노린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인터넷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던 해외사이트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구사하며 해외 게이머들과 플레이 할 때는, 이런 의도와는 살짝 빗나가 엄청난 생산으로 전선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맞붙는 물량전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 같다.

장장 구매한지 15~16년 만에 엔딩을 보게 된 게임으로, ‘나만의 게임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좋은 배경과 설정이 있으니 이를 버리지 말고 누군가가 정신적 후속작 이라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P.S 

인스타그램의 간단한 감상을 이제야 정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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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2. 8. 01:42



영화 걷기왕’ 의 주인공 만복은 아버지의 역사적인 첫 차에 그만 토를 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 소풍 가는 버스부터 배, 비행기, 오토바이, 소까지 안타본 것이 없지만 극심한 멀미 때문에 탈 수 없었다. 이런 선천적 멀미 증후군 때문에 만복은 2시간을 걸어서 고등학교로 등교한다. 만복의 재능을 알아본(?) 담임선생님은 만복을 학교의 육상부에 추천하고코치가 경보 선수로 만복을 받아들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력과 열정. 정말 좋은 단어다. 나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이고, 또한 즐겨 쓰는 말이지만 요즈음은 왠지 이상한 뜻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개인의 특성이나 취향 혹은 사회적 문제 마저도, 전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노력만능설의 신봉자들을 비아냥 거 리는 의미의 노오오오력’ 혹은 노력충’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또 젊은 청년들을 무보수로 착취하며, 열정이 있으면 부당한 일도 참을 수 있다는 소위 열정페이또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멀미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인 만복의 시선으로어느 순간부터 변질되고 왜곡되어버린 노력과 열정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한다만복이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는 영화 초반부터 만복의 주변사람들(아버지부터 담임, 코치 어른들) 만복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만복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에, 그들은 만복을 자기들 마음대로 규정하고 그냥 무심하게, 일을 처리하듯 다음 단계로 넘겨버린다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봤던 상황이라고 수도 있겠다.      

또한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담임이 만에 희망 대학과 학과를 추천해주었던 경험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만복은 자기가 경보에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육상에 점점 흥미를 붙이게 되고,학교 육상부의 고참이자 유망주라 있는 수지는 이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본다.       

수지는 처음엔 전형적인 타입의 노력파로 보인다. 죽기 살기로 하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본인 또한 그런 노력으로 성공을 일궈낸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더는 운동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신도 운동을 지속할 없음을 알지만, 평생 운동 하나에만 매진했기에 이제 와서 다른 진로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중반까지는 만복과 계속 갈등하는 인물이지만다시 육상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만복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이 무섭다고 하자 동질감을 느끼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예선 경쟁했던 선수들이 실격되어 본선에 진출하게 만복. 서울까지 갈생각에 걱정이 앞서지만, 이내 걸어서 서울까지 전국체전에 참가하겠다는 마음을 굳힌다영화 속에서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무언가를 타야만 했던  만복이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장면이라 가슴이 뭉클했던 같다.

그러나 무리하게 만복을 따라 나섰던 수지가 만복과 사소한 다툼을 벌이다 대회 전날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고,  이에 만복은 결의를 다지고 대회에 임하게 된다. 이때 만큼은 코치도 듬직해 보이고, 아버지도 딸이 방송에 나온다고 동네방네 연락하는 만복이 그동안의 시련을 딛고 우승할 것처럼 보이지만, 무리한 훈련과 함께 걸어서 서울까지 피로가 겹쳐 만복은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 다른 선수들과 함께 넘어지고 만다.        


어서 뛰라고 윽박지르는 코치들과 아픈 것도 참으며 이기기 위해 다시 일어서 걷는 선수들을 바라보다

만복은 생각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는 여태 보인 모습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심판에게 당당히 그만하겠다고 말하며 자리에 누워 버린다.


우리는 대부분 남이 정해준 목표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부터 그저 열심히 뛴다초등학교때는 좋은 중학교, 중학교에서는 좋은 고등학교고등학교에서는 이제 좋은 대학만 가면 끝날 알았지만 과연

이제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니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한다.      

그렇다면 취업하고 뒤에는?

이렇게 평생을 걸쳐 성과와 결과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가 학습되고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열정과 노력이라는 말은 와중에 어느새 가슴 뜨거운 단어가 아닌, 나보다 뒤에 있는 같은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조롱하는 의미의 단어로 전락해버렸다. 무슨 일이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최근 영화보다 영화 같은, 믿을 없는 사건으로 곪아 터졌다그렇기에 걷기왕의 만복이 우리에게 제시한 메시지는 더욱 의미가 깊다.

 

꼭 남보다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앞서 가야만 하나? 

 

꼭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는 것이 열정인가? 즐거운 열정은 없는 걸까? 

 

무엇보다그렇게 고통을 참고 버티며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순간만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이고 그런 삶의 방식만이 옳은 방식인가?  

 

나 또한 만복 아니, 그보다는 수지나 담임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은 좋지 않았던 형편 때문에 바쁜 대학시절을 보내야 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계속 주변의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더 잘나가는 친구를 보고 속상해 했다. 내가 우울하니 가족과도 다툼이 잦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놓아버렸다. 평생 이런 감정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한 즐겁고 유쾌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노는 거 안 빼먹으면서, 내 할 일도 열심히 했다. 어느새 주변에서 나는 학업도 챙기며, 알바로 생활비도 벌고, 학교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노는 것도 빼먹지 않는 특이한 놈이 되어있었다. 즐겁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점점 채워지면서 그때 깨닫게 되었다.   

 

 아 이런 게 진짜 열정이구나! ’

 

역설적이게도, 이런 류의 영화에서 가장 닮지 말아야 할 타입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인 만복의 친구, 지현이 가장 영화의 주제와 맞는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로는 그저 우등생에, 공무원을 희망하는 꿈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극중 누구보다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꿈이 공무원이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다그래서인지 오히려 상담 중 담임에게 힘들고 아픈데 왜 맨날 참아야 하냐며 되려 일침을 가한다.     

반대로 담임선생님은 맹목적으로 열정을 외치는 사람이다. 만복을 구박하던 아버지도 나중엔 만복을 걱정하고, 코치도 마지막엔 멋진 말과 함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유독 담임만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유형의 열정에 집착한다. 앞서 언급했던 노력신봉자들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이라고 하겠다.

공교롭게도, 만복을 보면서, 비슷한 제목의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홍만섭이 자꾸만 떠올랐다. 만섭과 만복은 이름 말고도 닮은 점이 많은 캐릭터이다. 만섭도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에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 하면 안되는 거냐고 항변하는 캐릭터이다.     

공무원 준비하라는 선배에게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고, 총장에게 족구장을 다시 만들어 달라 건의하며, 학교에 족구 붐을 일으킨다. 또한 학교 퀸카가 자기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백한다. 필요 없으면 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진 세상에서 그저 가슴 뛰는 대로 최선을 다한다.

아마 만섭과 만복 둘 다, 삶의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에게 알려줬던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우연히도 홍만섭을 연기한 배우 안재홍이 소순이 역할로 특별 출연한다.

 

영화 후반부에 만복을 걱정하는 담임을 달래며 코치는 이런 대사를 한다.

 

인생은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는 과정이다.  

 

똑같은 길에서 남과 경쟁하며, 최고를 꿈꾸는 것에 지쳤다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천천히 여유 있게, 나도 걷기왕을 꿈꿔본다


p.s 

이거 어느회사 입사지원때 과제로 야심차게 쓴 감상입니다. 여태 연락안오는거 보니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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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게임.2017. 2. 7. 02:47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장보고전, 충무공전, 퇴마전설 등으로 나름 명가로 불리던 트리거 소프트의 작품입니다. 전작인 퇴마전설에서 세 캐릭터를 마치 RTS 장르의 유닛처럼 드래그하여 동시조종 하기도 하는 등의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인지, 그 후속작인 2탄에 많은 기대가 있었습니다

당시 돈이 부족하고, 제 마음대로 매번 게임을 사기 어려웠던 학생 신분이었던 저는 나중에 주얼판으로 이 게임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디아블로 2 이후에 나온 게임임에도 그래픽과 사운드 면에서 딱히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마법효과 등의 그래픽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캐릭터들의 엉성한 움직임과, 일반 몬스터와 단지 색깔만 다른 보스급 몬스터들의 성의 없는 디자인, 그리고 같은 회사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들었던 듯한 비슷한 효과음들

동서양을 오가는 거대한 배경과 스토리는 충분히 좋았지만, 게임플레이면에서는 좋지 않았습니다. 스토리 진행중의 중간보스들은 밸런스 테스트도 해보지 않았는지, 이미 지나치게 강해진 주인공 캐릭터의 일격에 쓰러졌습니다

지하 던젼 입구를 클릭하다가 필드에서 공격받으면, 그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얻어 맞는 등의 사소한 버그도 있었습니다. 용병들은 그 다양함과 고용할 수 있는 인원에 비해 비효율적 이었습니다

전작에서 보여준 시스템은 사리지고 한번에 한명씩만 조종할 수 있게끔 바뀌었으며, 이마저도 컴퓨터가 조종할 때는 낮은 인공지능 때문에 없는 편이 훨씬 도움이었습니다. 거짓말 안하고 정말 닭XX리 수준입니다. 차라리 우리집 어항의 구피가 더 지능적으로 움직일겁니다. 때문에 계속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중반부까지 플레이 하다 그냥 멈춰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p.s 

오랜만의 추억으로 다시 꺼내보면 조금 평가가 달라질까 했지만, 아니 오히려 더 나쁩니다. 사실 저정도 그래픽은 그때도 좋지 않았어요. 전체적으로 압박이 있었는지, 서둘러서 내보낸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영화나 게임이나 제작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그닥 좋은 일이 아니지만, 더 좋지 않은 일은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나와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괜찮은 시스템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의 후속작이지만, 전작과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고, 당시 인기를 끌던 디아블로2와 어설프게 합쳐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나마 칭찬해주자면 어려운 제작 여건 속에서도 계속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일까요? 제작사인 트리거 소프트는 이후에 인기드라마인 태조 왕건의 후광을 입고 동명의 RTS 작품을 발매하기도 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주목받았지만 발매되지 못한 카오스, 한게임에서 온라인 RTS 작품으로 서비스 되었던 라크무등을 내놓다가 사라집니다.

대중성과 타협하려다 오히려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사례를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봤습니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지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Posted by 건호스
연극.2017. 2. 4. 01:27




춘식의 인생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신장을 떼어냈지만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자기 자신은 고통 속에 사지가 뒤틀리는 마법에 걸린 채 성탑 같은 옥탑방에 갇혀버렸다. 춘식에게 육신은 어떤 방법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춘식의 여자친구였던 영희에 의하면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닌 애초부터 괴물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끝내 행복한 결말을 맡는 왕자와 공주가 아니었다. 이세상이란 동화에서 괴롭고 뒤틀린 역할을 맡은 괴물이었을 뿐이다. 이는 천사로 표현되는 봉사자들의 형식적인 도움과, ‘몸이 그런데도 그게 되냐?’ 면서 춘식을 협박했던 영희의 오빠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에게 춘식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는, 동정 혹은 멸시의 시선만 허용되는 존재였다

춘식은 이러한 자신의 현실에 끝없이 분노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수단이 바로 동화이다. 춘식은 자신을 동화작가로 여기며 자신만의 동화를 써내려간다. 때때로 울분이 동화 전체를 집어삼켜, 잠시 손을 놓다가도 그는 다시 글을 쓴다

이 때 춘식에게 찾아온 것이 수미이다. 수미의 아이는 지금 신장이 녹아내려 죽어가고 있다. 수미에게는 춘식의 신장이 너무나 간절하다. 수미 또한 세상에 외면당한 존재이다. 원해서 행하는 일이 아니지만, 춘식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어찌되었건 자신의 장기를 돈으로 주고 산인간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춘식은 스스로가 동의했음에도, 종종 수미를 위선자라며 조롱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춘식은 수미가 달갑지 않기보다는, 수미를 통해서 온 구원. , 마법에서 풀려날 기회가, 꼭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하는 자기희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비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꼭 마지막에 아버지 왜 절 버리시나이까?’ 라며 절규하던 예수의 모습이 언뜻 떠오르게 한다.) 

수미의 입장에서도 자기 아이의 생명을 두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며 시간을 끄는 춘식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인지 서로 점차 이해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둘은 조금 미묘해 보인다. 애증어린 관계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극 내내 부각되는 선한 자의 의미가 가진 이중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여 진다.

 선한 자에 대한 의미가 잘 드러나는 것이 수미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춘식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수미는 몸은 정상이지만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의 본성을 깨달아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자신의 모습 또한 발견한다. 이 때, 춘식은 마치 정상인처럼 똑바로 서서 똑바로 말하게 되고, 수미는 반대로 춘식처럼 뒤틀린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이 뒤틀린 모습으로 수미는 자기 안에 있던 모든 감정을 토해낸다. 춘식에게도 비판을 가한다. 춘식이 기다리는 선한 자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춘식이 바로 그 선한 자이기 때문이다. 춘식은 남보다 더한 고통을 짊어졌다는 것을 우월감으로 느끼며 세상 모두를 자기보다 행복하다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 따지지 않을 테니 제발 여기서 꺼내달라고 애원하다가도, 이 고통을 우리에게 준 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 버리겠다면서 마음속에 있는 울분과 분노를 쏟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선한 자를 신으로 생각하고 극을 이해해 나가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면 신을 찾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어려움을 우리에게 준 것 또한 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앞에서 이야기한 선한 자의 의미가 가진 이중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춘식의 선한 자는 춘식을 마법에서 해방시켜 주겠지만, 그 대가로 춘식의 목숨을 가져가려 한다. 수미의 선한 자는 수미의 아이를 구하게 하겠지만, 그 대가로 수미에게는 춘식을 살해하였다는 죄책감을 남길 것이다. 이렇게 춘식을 육신이라는 족쇄에서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수미는 춘식의 선한 자가 된다. 또한 수미의 아이를 구해준다는 점에서 춘식은 수미의 선한 자이다.

 수미가 춘식의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되었을 때 춘식을 더 주저하지 않고 수술받기를 희망한다. 수미 또한 진심으로 자신의 이름은 애자이며, 동화를 쓸 것이라고 춘식에게 이야기한다. 무면허 의사(?)가 찾아오는 그 시점까지도 수미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막이 넘어가고, 춘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은 채(나는 춘식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수미가 방에서 춘식과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때 누군가 수미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을 보고나면,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은 반어적 표현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색다른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외면해 온 모습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소개된 줄거리만으로는 전형적인 신파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눈물, 콧물 다 짜내는 최루성 전개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음 따뜻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명을 구하는 감동의 이야기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그에 동반한 갈등이 나타남으로서 연극을 본 이후에도 계속 곱씹어보게 만드는, 난해하고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고 불쾌한 그런 이야기이다.

 지독하게 비참하고 비극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여 질 수도 있지만,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게끔 하는 것은 냉장고에 사는 아들의 존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냉장고 안에서 얼어붙어 잠을 자며, 언젠가 깨어나 일하기를 기다리는 아들의 모습은, N포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청년층을 대변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혹은 흙수저라는 말로 대변되는, 격차 속에 소외당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그러니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 또한 춘식과 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이모와 이모부, 아들의 대립은 춘식안의 자아의 대립이라 볼 수도 있다. 아들은 종종 세상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말하고, 이모부는 세상에 불이 나게 되면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굴뚝을 찾아다닌다. 이모와 이모부는 춘식에게 남아있는 희망을 상징하고, 반대로 아들은 세상에 대한 춘식의 분노를 상장한다고 보여진다.

 연극을 보면서 카뮈의 에세이인 시지프의 신화를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신에게서 바위를 끝없이 산으로 굴려 올리는 무용한 노동을 형벌로 받은 시지프의 신화를 인용,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내용이다. 카뮈 또한 허약한 몸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그리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시지프를 통해서 신이 준 무용한 형벌을 묵묵히 수행함으로 인해 신을 추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에게 이 고통스러운 형벌을 끝내달라고 애원하는 대신에, 신이 내린 형벌을 형벌로 인식하지 않고 묵묵히 해 나가면서 그 형벌이 지닌 의미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지프는 바위와 자신뿐인 세계에서 신을 추방하고, 바위를 올리는 형벌을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로 바꾸어 버림으로서 그 스스로가 자신의 세계에서 신이 된다.

 내게는 바로 춘식이 이 시지프와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선한 자가 마법을 풀어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 주기만을 기다리던 춘식은, 수미의 아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줌으로써 그 스스로가 선한 자가 되어 고통스러운 마법에서 풀려난다. 영희의 말대로 애초부터 누군가를 구하거나 사랑받을 수 없는 괴물로 운명 지어진 삶이었다 해도, 춘식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동화에서 수미의 아이를 구하는 기적을 행함으로서,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 동화작가라는 일종의 신이 되어 현실의 뒤틀린 괴물이 아닌, 누군가를 구하는 선한 자이자, 동화의 주인공으로서 괴물로서의 현실의 운명을 추방하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춘식이 수미에게 동화를 쓰자고 한 이유는 어쩌면 수미 또한 주어진 운명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이라는 선한 자가 춘식과 수미를 외면하였다면, 춘식이 그러했듯 수미 또한 신에게 고통을 끝내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수미 자신이 동화라는 세상의 신이 되라고 말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한다. 훗날 그 사실을 알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뽑고 방랑한다. 비극적인 삶을 산 그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내가 판단하니 만사가 다 잘 되었다’ 

이 한마디로 그는 신이 그에게 내린 비극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춘식 또한 마지막에 이르러 내가 원했던 결말은 아니지만, 괜찮아라고 말함으로써, 신이 그에게 준 고통스러운 운명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춘식이 수미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죄책감 보다는 일종의 유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수미와 함께 춘식을 보아온 관객, 즉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우리는 수미가 그랬듯이 춘식을 따라서 우리 자신의 동화를 써 내려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쓴 동화에서 선한 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고, 그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야한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동화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춘식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p.s 

15년 마지막 학기에 교양과제로 보았던 연극입니다. 이 연극도 지금은 딱히 공연하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작 그때보다 지금 제 입장에 필요했던 연극 같아요. 당시에는 마지막 대학생활을 화려하게 불태웠죠. 즐거웠습니다. 힘든 때도 물론 많았지만요. 분명 제가 어떻게 살면 즐거웠는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사이 잠깐 길을 잃고 헤멘 기분이 듭니다. 

저도 이제 정신차리고, 멈춰놨던 제 동화를 마저 다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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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인과바다  (0) 2017.02.02
Posted by 건호스
영화.2017. 2. 2. 22:47


복학생과 족구. 왠지 고학번을 한참 넘긴 나도 멀어지고 싶은, 단어에서부터 땀내나는 듯한 두 키워드로 만들어진 영화 족구왕. 영화는 이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복학생들의 표본을 보여준다.

주인공 만섭은 제대 후 칼복학한, 잘 생기지도 않고, 토익 점수도 없으며, 학점은 바닥이고 여자친구는 더더욱 없는, 지극히 평범한 복학생이다. 그는 복학 전에 학우들과 함께 뛰놀던 족구장이 교내 취업준비생들의 반발로 폐쇄되었음에 절망하고, 총장과의 대화 시간에 이를 직접 건의하기까지 한다.

또한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선배인 공시 장수생 형이 스펙 없는 만섭에게 공무원 공부나 착실히 할 것을 강요하지만, 만섭은 연애가 제일 하고 싶다면서 학교 제일의 미녀인 학교모델 서안나에게 교양과목의 조별과제를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안나에겐 썸을 타는 듯 미묘한 관계에 있는 전직 국가대표 축구선수 강민이라는 남자사람친구가 있다. 강민은 안나와 만섭의 조모임을 보고 만섭에게 시비를 걸고, 만섭은 이를 일대일 족구시합을 제안 간단히 제압하며 안나를 차지(?)한다. 이 시합은 한 학생의 직캠으로 전 캠퍼스에 퍼졌고, 얼마 뒤 개최된 체육대회에서는 족구붐이 일어난다.

영화는 대략 체육대회가 벌어지는 한 학기 동안의 대학교가 무대이다. 제목과는 달리 정통 족구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냥 지금 청춘들의 이야기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다들 짠하다. 악역(?)인 듯한 강민도 특별할 것 없이, 고시원에서 월세도 못내고 사는 흙수저로 보인다. 만섭은 등록금 낼 돈도 없어 퇴학처리 당하고, 장수생 형은 한때 족구의 고수였지만, 하라는 공부와 취업준비는 안하고 족구나 하다가 여자친구와 이별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기숙사에 살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로서는 극 중 만섭의 대학생활에 더더욱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청년문제를 만섭을 통해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만섭을 보며 짠해지는 장면이 좀 많았다.

가장 슬픈 장면은 아무래도 퇴학처리 당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등록금을 구할 수 없던 만섭이 결국 학기 중 퇴사 당하게 되는데, 무심한 듯 담백한 연출과 조교의 사무적인 태도, 그리고 만섭의 습관화 된 것 같은 친절한 모습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지나치게 미래만 준비하며 사는 우리와는 달리, 영화속의 만섭은 지금 현재를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족구장 재개 서명운동도 벌이며, 족구대회에도 참가한다. 안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비록 안나는 중간에 마음을 결정하고 강민을 응원하기로 하지만, 만섭은 그렇다고 족구도 안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이미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안나에게 과제 발표를 빙자한 멋진 고백을 하고, 발에서 피가 나면서도 족구를 한다. 결국 강민의 토목과를 제압하고, 식품영양학과를 족구대회 우승에 올려놓으며 족구왕이 되는 만섭. 하지만 안나는 그와 상관없이 강민에게 가버리고, 만섭은 쓰게 웃으며 그것을 바라본다.

성공만을 중요시하는 풍토, 이를 위해 항상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는 인식. 주인공 만섭을 통해 영화족구왕은 이에 의문을 던진다.

그저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건 안되는지,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뛰어보면 안되는지 말이다.


P.S 기억에 남는 명대사도 많고 안나와 만섭 공시생 형과 고깃집 여사장님등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몇 번 마음가는대로 쭉 쓰다가 글을 지웠습니다. 일일이 블로그를 통해 설명하기 보단, 직접 보고 느끼시는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대학! 청춘! 낭만! 여러분의 캠퍼스 라이프를 회상하며 족구왕을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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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
연극.2017. 2. 2. 01:04


원작을 2인극으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노인, 소년이 전부이다.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유머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극에 몰입하게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관객을 무대 소품 내지는 조연들로 활용한다. 덕분에 유쾌하게 웃으며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나도 엉겁결에 밧줄 잡아당기고 있었음.

(예를 들어, 관객을 물고기로 가정하고 낚시에 걸린 척 밧줄을 잡아 당겨 달라 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노인이 꿈 속에서 아프리카를 회상하는 장면과, 포기하지 않겠다는 직접적인 대사 이 두가지만 추가 된 것 같다.

원작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어를 낚은 노인이, 돌아오는 길에 결국 상어 떼 들에게 공격당하고 만다. 고기를 다 뜯기고 마지막에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 결국 성공을 갈망하며 쟁취하기도 하고, 한 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는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노인과 상어 떼들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치이고 또 치이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연극에서는 원작의 주제에서 생각을 더 확장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듯하다. 극의 마지막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노인은 피곤에 지쳐 곧바로 잠이 들지만, 그 속에서 다시 아프리카를 꿈꾸며 희망을 갖는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이 연극을 보며 다시금 실감했다. 영화야 한번 찍고 나면 그만이지만, 연극은 극을 시작할 때마다 매번 처움부터 끝까지 연기해야 하니 소모되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닐 것 같다. 관람하는 내내 두 배우의 열연이 생생히 느껴졌다. 원작의 감동을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었다면 연극 또한 적극 추천한다.


p.s 

싸이월드 블로그에 있던 글을 다시 게시합니다.

6년 전쯤에 휴가 나와서 친구랑 같이 본 연극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공연하는 곳이 없네요. 다시 공연되었으면 하는 연극인데 아쉽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소년의 독백 혹은 회상을 통해 노인의 이야기를 대신 전합니다. 위에서 2인극이라 언급했는데, 정말 소년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상어부터 별의별 모든 역할들을 맡아서 진행합니다. 

원작에서는 사람들이 물고기의 뼈를 보며 무심히 대화하며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연극에서는 그 대신 노인이 다시 꿈을 꾸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꿈을 꾸고 도전하잖아요? 

예전에는 너무 큰 욕심을 내고 허망하게 그것을 잃어버리는, 인생무상이 주제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른 생각도 듭니다. 그저 노인에게는 그 큰 청새치가, 뼈만 남겨 가져오게 되더라도, 절대 내어줄수 없는 노인의 꿈 혹은 노인 자신이지 않았나 싶네요.


마지막에 얼마나 남아있을진 모르겠지만, 

저도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제 물고기를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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