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배트맨 대 슈퍼맨 - 스포일러 있음.
영화.2017. 3. 11. 16:20



작년 한 해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영화를 들자면 단연 이 영화를 제외할 수 없을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줄여서 흔히 뱉대슾이라 부르는 이 영화는 DC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슈퍼맨 리턴즈, 그리고 반지닦이, 아니 그린랜턴이 두 번 이나 뒤집어 엎었던 저스티스 리그 실사화의 제대로 된 포문을 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전작인 맨 오브 스틸부터 무게감 있고 심각한 분위기로 컨셉을 잡았다. 한 때, 다크나이트 이 후로 모든 영화들이 싸이코패스 악역을 보여주며 다들 범죄느와르 인 척 하던 시절에 조금 뒤쳐지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아무튼 DC확장 유니버스는 마블과의 차이점으로 이런 길을 걷겠다고 했다.

 

오프닝은 분명히 나쁘지 않다. 조드와 슈퍼맨의 싸움에서 팝콘이나 가져와야 할 평범한 배트맨은 자신의 미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슈퍼맨이 위협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역시 때려부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잭 스나이더 감독답게 맨 오브 스틸의 장점이었던 장면이, 다른 의미로 느껴지게 잘 연출했다. 일반인이 그 싸움 한복판에서 느꼈을 공포와 무기력함이, 배트맨을 통해 관객에게도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이후에는 영화가 자기가 런칭 시켜야 할 뒤의 수많은 시리즈들을 위한 설정을 열심히 깔아주느라 매우 지루해진다. 그 와중에 로이스 레인만 유독 잘 케어하는 슈퍼맨은 사랑꾼이라기 보다는, 좀 생각 없어 보인다. 아니 자기 여자친구 위험할 때는 그렇게 잘 찾으면서, 엄마는 왜 못 찾는 건데???

 

그렇게 렉스 루터 이야기도 하고, 슈퍼맨이 법정에도 가고, 배트맨은 분노해서 열심히 헬쓰하고, 뜬금없이 원더우먼은 열심히 정보를 빼낸다. 회사와 히어로, 투잡에 지친 배트맨이 인저스티스 떡밥을 까는 꿈을 꾸고, 플래시가 그 떡밥에 양념을 가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우머 없이, 마치나 심각하고 진지해 어때 어른스럽지?’ 하고 말하는 중학교 2학년생을 보는듯, 지루하게 영화의 모든 시간을 끌고 간다. 이 지루한 설정 설명 중에 가장 괜찮았던 장면이라면, 슈퍼맨 청문회 폭발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만은 유일하게 렉스 루터가 제대로 악당역할을 하는데, 착하디 착한 슈퍼맨은 예상 못할, 더 없이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중상모략으로 슈퍼맨을 난처하게 한다.

 

렉스 루터는 많이 아쉬운 캐릭터이다. 배우인 제시 아이젠버그도 사실은 다른 역할 이었다가 할 수 없이 맡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인지 그냥 제시 자신을 연기하는 느낌이다.

 

둠스데이의 섯부른 등장과 소모 또한 매우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내 기억으로는 부활한 조드가 음성으로 슈퍼맨에게 기다리라고 엄포를 놓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차피 100% 원작을 존중할 것이 아니었다면, 둠스데이가 우어어어어어만 외치는 괴물이 아닌 언변을 갖춘 조드의 환생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했을까? 이왕 심각하게 놀란병에 걸린 척 할 거였으면, 이렇게 말과 행동으로 슈퍼맨의 고뇌를 더해주는 것이 관객의 이해를 돕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을, 단 한 영화에, 그것도 너무 서둘러서 행했다는 점이다. 마블이 큰 그림을 보고 히어로들의 단독 작품을 먼저 내보낸 끝에 회심의 어벤져스를 내보냈듯이, DC도 그랬어야 한다. 맨 오브 스틸 다음에 뱉대슾이 나오면 안됐다. 적어도 배트맨 단독 영화, 맨 오브 스틸 2 그리고 원더우먼 컴퓨터에 티저 영상(…) 이 아닌 저스티스 리그 각각의 독자적인 이야기가 어느정도 진행된 뒤에 이 뱉대슾이 나오고, 그 다음 저스티스 리그가 나왔어야 한다. 물론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 다음이었어야 하고.

 

문제가 많이 되었던 느금마 마사씬의 경우 아예 납득되지 않는 수준은 아니었다. 대사만 좀 더 다듬었더라면 영화의 멋진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평소에 슈퍼맨도 자기 엄마를 마사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배트맨 앞에서만 마사를 구해달라하니,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를 구해줘. 이름은 마사야.’ 뭐 이런식으로 말했다면 관객도 배트맨의 급격한 태세변환을 좀 더 잘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 하나의 실수는, 슈퍼맨을 너무 빨리 희생시킨 점이다. 이 맨 오브 스틸에서 처음 히어로가 된 헨리 카빌 슈퍼맨은 단 2화만에 악당과 싸우다 전사한다. 관객과 함께 정들고 이야기를 쌓아 나가기 전에 일단 죽는다. 당연히 여기서 깊이감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당연히 부활할 것을 안다. 앞에 말했던 대로 너무 서둘렀던 점 중에 하나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줄 수 있었던 캐릭터를, 일회성 비장미를 위해 너무 쉽게 희생했다. 그것도 영화제목이 배트맨 대 슈퍼맨인 영화에서 슈퍼맨을.

 

제작비가 너무 들어서 흥행이 크지 않다 어쩌다 하면서도 8 8, 그러니까 약 9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 외전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 형편없음에도 무려 7억을 벌었다. 당연히 DC 팬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반지닦이 같은 흥행참사가 안 벌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마냥 욕하면서 보는 노선을 가겠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p.s

이거 본 뒤에 시빌워를 보았는데, 이 영화가 응당 했어야 할 것들을 시빌워가 더 잘 합니다. 이런 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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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