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영화.2017. 3. 8. 22:45


 

여자친구에게 같이 보자고 했다가 나의 영화 고르는 안목마저 재평가 받게 한 희대의 괴작. 어째서 그 많은 돈을 들이고, 게임업계에서는 스토리텔링에 있어 압도적인 히믈 발휘하던 블리자드가 이렇게 몰락했는가.

 

아니 몰락했으면서도 43천달러 정도의 수익을 낸 것이 대단하다고 할, 블빠들의 충성심 혹은 와우저들의 충성심에 경의를 표해야 할 정도이다. 소품은 엉성하고, 설정은 허술하며, 특수효과는 들쭉날쭉하고, 편집은 너무 잘게 많이 잘랐으며, 전개는 중구난방이다.

 

매력은 뭐냐고

음... 오크 진영은 멋진 캐릭터들이 많다. 캡틴 아메리카를 보는 것 같은 듀로탄과 역시나 든든한 사이드킥의 역할을 하는 둠해머. 마법쓰는 꼬부랑 할배인 줄 알았더니, 헐크 호건 마냥 근육질 노익장을 과시하는 나쁜남자 같은 매력의 굴단. 그리고 판타지영화 사상 가장 멋진 마법 시전 장면까지. 물론 그 중 최고는, 워크래프트라는 세계관의 묵직함과 투박함을 잘 드러내는 인상깊은 배경음악이다. 



 

원작게임의 디자인을 잘 살렸다고 소품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거짓말 안하고 주몽에서 부여군이 곤도르에서 직수입 한 것 같이 생겼던 갑옷과, 그 생김새가 너무나 흡사하다. 정말 가상의 대륙, 가상의 왕국에서 닳고 닳은 땀내나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누가봐도 영화용 소품처럼 보인다. 한국사극의 고질병인 쓰잘데기없이 화려한 의상이 헐리우드에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왕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설정의 이야기를 다룰 생각이었으면, 빨리 넘어갈 생각 말고 과감히 나갔어야 한다. 반지원정대가 그러했듯이, 워크래프트도 그 세계관과 오크, 혹은 휴먼의 당위성을 차근차근 설명 시키며 관객이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다. 처음 듀로탄의 가슴 절절한 독백부분에서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지만, 매정하게도 이 영화는 그 기대를 무참히 저버린다.

몇 초 만에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느낌으로 마구 컷을 남발한다. 무슨 시험 전 단기 속성 총정리 인강 마냥 신속하게 전개되는데, 워크래프트를 어느정도 알고 있어도 힘들고, 아예 모르는 관객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 오크와 휴먼, 아니 호드와 얼라이언스 양측의 입장을 모두 설명하고 싶었다면 똑같은 사건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어도 신선했을 것이다. 영화를 둘로 쪼개 오크, 휴먼 이렇게 두편으로 나왔다면 지금처럼 아쉬운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들어낸 아버지의 깃발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훌륭한 참고사례가 있지 않은가.

 

편집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전투씬에서도 그닥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말 너무나 충실히 원작을 반영한 탓인지, 여기서도 한국 사극 마냥 우루루 몰려가서 집단 백병전을 벌이는데, 비장함도 무게감도 전혀 없는 패싸움이다. 워크래프트 속 전쟁장면을 보고 싶다고? 차라리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반지의 제왕은 좀 더 사실적인 전투장면을 만들기 위해, 영화 속 중간계의 기술 수준과 비슷한 중세의 공성전 등을 면밀히 참고했다고 한다. 때문에 우르크하이들이 진군할 때, 펠렌노르 평원에 수많은 사우론의 군대가 정렬했을 때, 그 공포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워크래프트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애초에 이러한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전혀 없어 보인다.

 

마지막에 쿠키 영상으로 쓰랄의 등장을 예고하는데 과연,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까


천하의 블리자드도  결국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실패한다는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새삼, 평가가 어떻든 레지던트 이블시리즈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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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