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라이프 오브 파이 - 스포일러 가득.
영화.2017. 2. 22. 17:19




호랑이 '리처드 파커' 와의 생존기를 도무지 믿지 못하는 파견직원(혹은 영화속의 소설가) 들을 위해 주인공 파이는 자신의 경험담속의 등장인물들을 인간으로 바꾸어 설명하는데, 이게 굉장히 섬뜩하면서도 진실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아마 진짜 사실은 이 이야기일 것이다.


오랑우탄은 '어머니', 다리 다친 얼룩말은 '고기 스프를 밥에 뿌려 먹는 행복한 불교신자 중국인 선원', 하이에나는 '험악한 프랑스인 주방장' 정도로 대입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역할은 결국 주인공 파이의 또다른 모습이 된다. 아래는 우리 가족의 각각의 해석이다.


건호스 ㅡ 호랑이는 결국 파이가 고난을 겪으면서 얻게 되는 신념, 의지, 용기와 같은 상징이자 파이의 성장을 의미한다. 파이는 조난 초반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공격할 당시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 더한 맹수인 호랑이를 길들이기(?)까지에 이른다. 나는 리처드 파커가 상징하는 것이 파이가 소년에서 남자로 자라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 ㅡ 호랑이는 결국 파이가 짐승의 모습으로 행한 악행의 형상화이다. 후반부 선박회사 직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파이는 자기 어머니를 죽인 주방장을 결국 죽인다고 말한다. 영화초반에 하이에나를 죽이는 것도 호랑이이며 따라서 아버지는 인간소년의 모습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 본연의 선함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호랑이는 그 반대되는 측면에서 악행의 형상화라고 보셨다. 해서 결국 영화 대부분은 파이의 내면의 선 과 악, 두 내면의 싸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 ㅡ 양면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해석과 비슷하지만, 어머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으로 서의 이성이나 도덕, 윤리 관념이 완전히 빠진, 동물 로서의 한 객체를 나타내고, 반대로 소년은 인간이 짐승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인 이성, 도덕 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셨다. 해서 본능과 이성의 충돌로 볼 수 있다고 말하셨다(영화 속 주인공의 아버지도 이성을 강조한다, 주인공 또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살 수 없었을 거라는 대사를 말하기도 한다.)


내 나름대로 해석을 더 덧붙여보자면, 영화 제목이 'life (인생)' 인 이유가 영화에서 파이의 생존기 자체가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태평양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혹은 미래의 불확실한 삶의 모습이 망망대해로 표현된 것이다. 호랑이 '리처드 파커' 는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난이나 시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힘겹고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그저 그 순간이 빨리 끝나고 지나가 버리기 만을 바란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고난들이 갈수록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켜주고 성장하게 만든다.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는 파이의 모습처럼. 

파이와 호랑이가 마주하는 영화속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며, 인생도 마찬가지로,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며 지금을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바로, 기쁨과 행복도 같이 있다는 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이렇게 '빨리 가버려라!' 하고 흘려버린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 인생도 그처럼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같이 떠올라, 더욱 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영화의 의미가 인생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같이 떠오른 것은 영화 속 에서 '식인섬'이라 불리는 미스테리한 섬 이었다. 이 섬은 낮에는 미어캣들이 빽빽히 뛰어놀고 숲이 우거져 먹을것이 풍족해 보이는, 마치 태평양의 오아시스 같은 모습이지만, 밤에는 돌변하여 섬 전체가 산성으로 변해 주변의 모든 것을 소화시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섬 전체 모습을 잡는 장면에서 마치 사람이 누운 듯한 형상으로 나온다.)

파이는 잠시 그냥 여기서 머물러 살까 생각도 하지만, 연꽃처럼 보이는 꽃잎 속에서 사람의 이빨을 보고, 여기에 남아있다가는 결국 자기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아니면 섬에 흡수되고 말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리처드 파커'를 데리고 다시금 육지를 찾아 항해에 나선다.


'리처드 파커' 가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는 발전적 고통. 다시 말해서 성장통이라 생각한다면, 이 식인섬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넘치는 사치와 향락으로 볼 수도 있고, 또한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함을 택하는 나태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대기업과 공무원만 희망하면 미래가 없다던 기사가 떠오른다.)

파이의 항해에서 궁극적 목표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인데일견 풍족해 보이는 식인섬은 진짜 목표를 향해 가야할 파이에게 갈등을 준다. 지금 생각하면, 식인섬은 관객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이라면 모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람들은 꿈을 향해 뛰면서도 수많은 불안과 유혹에 휩싸인다. 어떤 목표이던 간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게 지루하고 힘들다. (때에 따라서는 물질적인 노력도 필요로 한다!) 반대로 포기는 매우 쉽다.

하던 노력을 안하면 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 는 속담이 말해주듯 변명하는 방법도 많다. 하지만 그런 포기가 점점 쌓이면 좌절이 되고좌절들이 쌓이면 결국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마치 식인섬에서 치아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조난자처럼 말이다

그저 열심히 노오오오오력을 하라는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삶의 의미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영화가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인섬에서 탈출하는 파이는 위험한 맹수인 리처드 파커를 버리지 않고 기다린다. 목표에 따른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견디겠다는 의지의 표현일수도, 또한 모험을 다시 시작할 맹수와 같은 용기, 본질적인 의문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육지에 다다랐을 때, ‘리처드 파커는 파이를 놔두고 홀연히 정글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지금 어떨까? 지금 내 곁에는 또다른 리처드 파커가 있을까, 아니면 이미 나를 떠나갔을까

만약 나 혼자라면, 나는 충분히 성장했을까?


p.s

예전에 어떤 동네 미용실 사장님께서는 제 머리를 다듬으며, 인도영화가 이렇게 발전했는 줄 몰랐다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인도 나오면 다 인도영화죠 뭐. 다른말 안하고 잘 맞춰드렸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성 - 스포일러  (0) 2017.03.02
게이머  (0) 2017.02.23
소오강호  (0) 2017.02.20
마하 2.6 풀스피드  (2) 2017.02.17
밀양 - 생각 정리 (스포일러)  (2) 2017.02.14
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