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알렉산더
영화.2017. 3. 28. 20:54



시대극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소개할 영화 또한 시대극이 유행하던 시기에 야심 차게 나왔던 영화이죠.

알렉산더 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알렉산더’.

기대와는 다르게 처참히 망해 흥행실패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판, 최종판 등 다양한 편집본이 나와있어요. 오늘은 이 아쉬움과 억울함이 많은 듯한 영화를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사실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극적인 경우는 거의 없죠. 기승전결을 딱 나누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불세출의 풍운아라 할지라도 누워 뒹굴며 잉여처럼 지낸 날들 또한 있으므로, 이를 두시간 남짓한 영화에 극적으로 표현하기가 많이 어려운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위인의 삶 중에 순탄한 기간(?) 이 있는 경우에는 여지없이 생략되거나, 아니면 드라마를 위해 새롭게 각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드라마 속의 위인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어린시절부터 온갖 개고생을 하며, 무협지의 주인공 마냥 피를 토하는 인생역정을 딛고 성장하는 것으로 다듬어질 때가 많아요.

 

영화 알렉산더는 이러한 흐름에 정반대로 나아가는 영화입니다. 각색보다는 고증을 통해, 알렉산더의 어두운 이면도 조명하는 등, 요즘 매체들이 수없이 떠들어대는 인간 알렉산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때문에 예고편의 능수능란한 편집을 보고, 거대한 역사 전쟁 서사시를 기대했던 관객분들은 실망하실 거에요. 저 또한 그 중 하나였구요. 어렸을 적 위인전기에 나온 정ㅋ벅ㅋ자 알렉산더 대왕의 호쾌한 정복기를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알았지만 현실은 아니었죠.

 

영화는 다 늙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알렉산더 시기를 회고하는, 다소 교양 다큐멘터리 적인 접근을 합니다. 썩 좋은 아버지와, 역시 썩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던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 그리고 그 속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불완전한 아들 알렉산더.

 

또한 그 때의 그리스 청년들이 그러했듯 알렉산더도 게이였습니다. 역시나 영화에서도 헤파이스티온(디씨 확장 유니버스 조커!)과 환관 바고아스와 애틋한(?) 관계로 표현됩니다. 물론 동성애가 어두운 일면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많이 부각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저는 영화의 게이스러움에 당황하고 그 뒤에 인터넷을 찾으면서 더 알게 되었거든요.

 

이런 면에서는 사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는 합니다.

 

천재적인 지휘관임은 분명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죠. 그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는 무모함을 많이 보였고, 영화에서도 표현되지만, 운명을 건 도박에 운이 잘 따라준 면도 많았습니다.

 

폭음도 엄청나게 즐겼습니다. 어느정도냐 하면 대판 마시고, 자신을 구해주었던 휘하 장수와 주사부리다 열 받아서 죽여버립니다. 정적에게는 냉혹했죠. 물론 이것은 모든 역사적 리더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는 합니다마는. 알렉산더 사후 사분오열 된 것은 후계자라 할 만한 사람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투씬은 딱 2, 가우가멜라와, 인도 정복기만 나오지만 강합니다. 특히나 가우가멜라 전투는 최고지요.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을 뿐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의 내 인생 그 전투일 그 극적인 순간의 긴박함이 잘 살아있습니다. 전투씬의 전개를 떠올리니 더더욱 다큐멘터리 스러운 느낌을 감출 수 없네요. 꼼꼼히 전투의 진행 경과를 살펴줍니다. 보기만 멋져보이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더가 어떻게 이겼는지 관객이 잘 이해할 수가 있어요. 학습효과가 좋습니다.

 

어떤 평론가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네이버 영화란에 있던 한줄평이 이 영화를 잘 설명합니다.

 

정복자 놀이꾼의 안쓰러운 뒷모습이 여기 있다.’

 

마지막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사관에게 적지 말라고 당부하며, 사실 알렉산더는 우리들이 죽였다고 말합니다. 말라리아가(그리고 그 미친 폭음) 가장 유력한 학설이지만, 확실하지는 않으니 영화로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영화를 본 지 오래전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의 원대한 이상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쯤에서 죽인 거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영화 속 프톨레마이오스는 욕심 때문에, ‘하나된 세계라는 이상을 무너트렸음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겠죠.

 

실제로도, 알렉산더 사후 통합된 제국은 없었습니다. 그 휘하의 장군들이 왕을 자칭하며 정복지를 나눠 가지고 또 서로 싸움을 벌였죠. 물론 알렉산더의 왕비와 알렉산더의 자식은 필요가 없어지자 제거당합니다. 그가 이룩한 통합된 세계가 그의 사후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을 영화는 은유적으로 알려주려 했던 것 같아요.

 

영화가 전체적으로 정적인 탓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볼만한 영화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 알려지지 않은 면들이 있고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알려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쉬운 방법도 있었을 거에요. 하나의 전투 혹은, 한 순간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가장 극적이고 빛나는 순간만 조명하는 방법도 있었겠죠.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p.s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영향을 받았다 합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진들에게 일일이 보게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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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