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다식 아키비스트의 수시 건호스. :: 밀정
영화.2016. 9. 17. 20:08

#밀정 #김지운 #공유 #송강호 #이병헌 #엄태구

작년 영화 '암살'이 천만관객을 넘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독립물(?)의 포문을 열고 '덕혜옹주' 와 함께 올해 그 바톤을 이어받은 영화.

암살과 비슷한 배경과 소재 덕인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밀정을 휠씬 재미지게 보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암살'은 호쾌한 액션 블록버스터로, '밀정'은 티비속 명화극장에서 흘러나오는 고전 첩보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혼란한 왜정시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주는 스릴과 이에 따른 몰입감이 상당한 영화다. 정보원들이 모호한 정체성에 고민한다는 점에서 왠지 본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김지운 감독은 이번에도 절정의 영상미를 선사한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배경은 오히려 우리에겐 지독하게 힘든 시기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음악 선곡 또한 탁월하다. 적재적소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볼레로가 특히 인상깊었다. 의열단원들의 그토록 기다리던,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벌이는 축제같은 느낌이랄까.

의열단과 일본 양쪽을 두고 고민하는 정출의 모습에서는 '카게무샤' 도 많이 생각났다. 일본 전국시대,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를 하던 좀도둑이 결국에는 신겐에게 동화되고, 다케다가와 함께 그 운명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극 중 정채산의 말대로 '마음의 빚' 때문에 점차 생각한적도 없는 의열단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동화되어가는 정출의 모습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송강호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공유 또한 '부산행'과 함께 이 작품으로 올해 최고의 흥행배우가 될 듯 싶다. 아마 영화를 본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정채산 역의 이병헌이 관객의 예상보다 훨씬 더한 씬스틸러였다. 배역에 120% 들어맞는 그 무게감은 대체불가능이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진짜 악랄하고 냉철해 보이는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도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주목받을 듯.

독립물에서 관객몰이를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애국심에 기댄 진부한 신파장면은 없다. 정출의 행보를 따라가며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마지막엔 헬조선이니 하는 생각 따위는 이미 지워져있다.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다 그 끝에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다.
 
이 세련되고 우아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만드는데, 이러한 점은 일단 울리고 보려는 다른 영화들이 꼭 배워야할 점이라 생각된다.

원래 올해의 영화로 곡성을 점치고 있었지만 그 옆에 한자릴 더 놔야할것 같다. 독립물, 첩보물로써 두고두고 곱씹을 고전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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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