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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17 살아 있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1
영화.2016. 7. 17. 12:11
#부산행


'언니야. 고생많았다.'


아직 개봉 전(?)이라 혹여나 큰 스포일러가 될까 글 쓰기를 망설였으나, 이미 사실상의 개봉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므로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도 정식개봉일을 기다리신다면 영화 감상 후에 이 글을 읽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사실 칸에서의 기립박수라던지 예고편만 봤을때 영화 부산행은 그리 큰 기대를 주진 못했다. 그 뱉대슾도 내부시사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 않았는가.

은근히 똥망작이기를 바라던 나의 묘한 기대감과는 전혀 달리, 유료시사라는 뻔한 밀어주기로 인한 반감과는 달리, 영화 자체는 꽤 괜찮은 물건이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가 나올때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비판적 메세지 또한 놓치지 않으며 장르 특유의 스릴감도 잘 살렸다. 물론 눈물빼게 만드는 한국적 요소도 잘 녹아들어가 있다. 그야말로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 라는 말이 아쉽지 않은, 아마 요 근래에 국내외를 통틀어도 잘빠진 좀비 영화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주인공인 공유는 지금 길가는 취준생을 붙잡고 어느분야를 준비중이냐 물어보면 대부분이 대답할, '그뮹' 분야의 매우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이다. 역시나 이런 주인공의 클리셰로 가족과는 소원하다. 아내와는 별거중이며 딸과도 썩 좋지못한관계.

작중 마동석에게 '개미핥기'로 표현되지만 딸마저도 부정하지 않을만큼 성공에 충실하게 살아온 한국인이다.
그리고 그런 공유와 매우 닮아있는 악역으로 저 운송회사의 상무라는 전형적인 한국형 중년 아재가 나온다. 역시나 사회적 성공만을 최대 목표로 살아온 캐릭터의 전형성을 보여주며 오로지 자기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극 초반의 공유의 모습도 저 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뛰어오는 임산부앞에서 문을 닫아걸고,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딸에게 '이럴때는 자기부터 챙겨야 하는거야' 라며 딸을 혼낸다.

그래도 차이점이라면 아재와 달리 공유는 지켜야할 딸이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그는 냉정한 모습에서 점차 사람들과 협력하고 서로 도와가며 결국 자기가 잊고 살았던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아재는 열차 내의 여론을 주도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 또한 더 빨리 입수하기는 하지만, 작중내내 철저히 혼자이다. 그와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는 캐릭터는 없다. 아재에게는 자기가 살기위해 좀비떼에 던지거나 밀치는 도구로서 밖에는 인식되지 않는 듯 한다.

해서 마지막 동대구역에서의 탈출 후 공유와의 일대일 결투는 악역이지만 애처로움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중 감염자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기 전에 과거에 두렵거나 잘못했던 일들을 (명확하진 않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모양이다. 초반에 갑자기 열차에 뛰어든 감염자가 (전혀 몰랐는데 심은경이었다고) 연신 '잘못했습니다'를 내뱉으며 자기 다리를 묶는 것과 아재가 감염 후 공유에게 '아저씨 저 집에좀 데려다 주세요. 우리 엄마가 기다려요.' 라고 울먹이며 어린이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아마 아재가 부산시로 추정되는 집주소를 읊는 것으로 보아 정말 노모를 찾아 집에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삭막한 아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성이 아니었을까.

뭐랄까. 그런 악역들의 마지막이 대게 그렇지만서도 내심 안타까웠다. 평생을 성공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 성공을 이루고,  그 아재 또한 그 사상에 맞추어 모든것을 버리며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어찌보면 그 상황에서도 단지 자기가 여태 살아온대로 했던 것일 뿐.

결국엔 극장을 나서면 마주하게 될 우리의 모습이 저 아재가 아닌가 싶어 씁쓸하고 대놓고 미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재의 '집에 데려다달라'는 대사가 자꾸 머리를 맴돈다. 그 또한 한때는 동심 가득한 어린이였고, 누구보다 즐거운 청춘이었을 것이다.
공유는 감염된 아재를 저지하다 결국 같이 감염되고, 정유미에게 딸을 부탁한뒤 완전히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서둘러 멀어진다. 그래도 딸을 지키며 점차 변하는 모습을 보인 그가 마지막으로 보는것은 처음 딸을 안았을때의 행복한 순간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 '헬조선'에 사는 모두가 그렇지 않나. 여가시간에는 무언가 자기발전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 올바른 듯하고, 항상 절제하고 저축하며 내일을 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모르겠다. 다른 관객보다도 많이 울었던거 같은데, 결국 작중인물들의 모습이 이 사회를 살고있는 수많은 우리의 모습이였기 때문일거다.

마지막에 가서야 진짜 행복이 뭔지 알게된 공유의 웃음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그렇게 잘나게 살았는데 결국 죽을때가 되서야 놓친것들을 되돌아 보는구나.
우리도 종종, 아니 많이 그렇지 않나. 취업하기 전에는 안된다고 말하다가도, 막상 일하는 사람들은 학교때가 사무치게 그립다고 말한다. 죽을만큼 놀아야 한다고.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 성공만을 위해 뛰어가는 삶이라면 우리가 좀비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밀치고 혼자 살아남는다면 난 과연 인간이라고, 살기위해 어쩔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래서 열차를 향해 뛰어드는 좀비의 모습들, 특히나 매달린 좀비에 다른 좀비가 매달리고 또 다른 좀비가 매달리고 그 위를 다른 좀비가 밟고 올라가고 하는 모습에서 하나가 살거나 아니면 다같이 망하는 과잉경쟁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서류부터 떨어지는 취업난에 욕을 한바가지로 하다가도 티비를 틀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며 가차없이 탈락을 정하고 냉정히 판단한다. 나와 좀비가 다른 게 무엇인가 싶어 섬짓했다.

영화로만 보았을 때, 특히나 전화 중 감염되어가던 공유 어머니의 상태로 보아 '28일 후'의 분노바이러스 비슷한 설정으로 여겨진다. 작중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며 감염되어가는 사람(?)은 세명 정도이다. 마동석과 착한 할머니 그리고 공유. 아마 이 세명의 행동으로 보아 미리 감염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어느정도는 통제가 가능한 듯 싶다. 마동석은 감염되어 가면서도 끝까지 좀비들을 막았고, 할머니는 감염 후에도 다른 감염자보다 매우 얌전한 모습을 보인다. 공유는 심지어 행복한 때를 떠올리며 웃으며 자기 의지로 기차에서 뛰어내린다.

여담으로, 동생할매의 테러(?)에 대해선 나는 그냥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찌어찌 좀비를 밀며 15호칸 까지 오지만, 15칸 사람들이 감염됐을지 모른다며, 앞칸 생존자들을 막는다. 이와중에 마동석이 먼저 희생되고, 할머니도 동생할매를 보며 웃으며 죽게 된다. '결국 그렇게 갈거면서, 등신같이 지생각 못하고 퍼주기만 한거냐.' '언니야, 고생 많았다.' 이 말을 뒤로 문을 확 열어버린다. 평생 착하게 살았음에도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감염되고 나서도 화 한번 못내는 언니를 대신해서 세상에 복수했다고 생각했다.

두서없었지만 이쯤에서 글을 마친다. 무조건적인 정부비판도 아니고 기차 내부에서의 이기심에 의한 분열도 보여줬고, 대전역에서 감염된 모습과 달리 부산에서의 늠름한 군대의 모습이라던지 비교적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선을 유지한 점도 좋았다.

P.S 가출소녀가 '살려주세요'가 아닌 '잘못했습니다'를 말하게 한 것이 오히려 초반 공포감을 더 크게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정말 궁지에 몰린 사람이 공포에 질려 신을 찾는 느낌. 현대의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종교적 징벌같은 느낌이었다.

P.S 2 제 인스타에도 올라와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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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호스